오피니언 취재일기

조희연 교육감의 아전인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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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현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정현진사회1부 기자

정현진사회1부 기자

“국정 농단 사태에 화가 나서 촛불을 든 것이지, 전교조를 지지하기 위해 나간 게 절대 아닙니다.”

얼마 전 취재 과정에서 만난 김모씨는 고교 2년생 자녀를 둔 학부모다. 그는 조희연 서울교육감이 전교조가 전임자 2명을 두는 것을 허용했다는 소식에 어이없다는 반응이었다. 앞서 지난달 26일 조 교육감은 “촛불 시민혁명에 내재한 박근혜 정부의 국정 농단과 적폐에는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도 핵심적으로 들어 있다”며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촛불민심이 전교조를 지지한다는 주장인 셈이다. 하지만 김씨는 “촛불민심과 전교조가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현재 전교조는 법의 보호를 받는 정식 노조가 아니라 법외노조다. 2013년 고용노동부는 해직 교사 9명을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것을 이유로 전교조에 법외노조 통보를 했다. 교원노조법은 현직 교사만 노조원으로 인정하고 있다. 전교조가 정부를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섰지만 1심과 2심에서 모두 패해 이제 대법원 판결만 기다리는 중이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상황이 이런 데도 조 교육감이 전교조 전임자를 허용한 이유는 뭘까. 서울교육청 이상수 대변인은 “전교조 문제를 계속 불법으로 볼 것이 아니라 제도권 내로 끌어들여 공론화하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난해 5월만 해도 조 교육감의 태도는 달랐다. 당시 그는 전교조 전임을 이유로 무단결근한 ‘교단 미복귀자’ 9명을 법대로 직권면직했다. 그런데 채 1년도 안 돼 엉뚱하게 ‘촛불민심’을 내세워 입장을 바꾼 것이다. 그가 허용하기로 한 전교조 전임자 2명은 한 달 넘게 학교에 나오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서울교육청 내부에서도 우려의 소리가 나온다. 한 교육청 관계자는 “아직 대법원 판결이 남은 상황인데 굳이 지금 이 문제를 왜 꺼내는지 모르겠다. 대법원 판결을 기다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많다”고 전했다. 서울의 한 고교 교감도 “법을 지켜야 할 교육감이 법을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교육감은 해당 지역의 초·중등 교육을 책임지는 막중한 자리다. 그의 한마디,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교육 현장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그런 그가 자신의 소신과 해석만을 내세워 법을 어기는 상황은 지극히 비교육적이고 납득하기 어렵다. 마침 교육부가 서울교육청에 4일까지 전임자 허용을 철회하라는 이행명령을 내렸다. 조 교육감이 어떤 답을 내놓을지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진정 전교조 문제를 원만하게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해결하고 싶다면 대놓고 법을 어기는 태도만큼은 철회해야 한다. 시종 평화적인 모습을 유지했던 ‘촛불집회’의 참뜻을 되새겨보길 바란다.

정현진 사회1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