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다물고 괴로워하는 보수표 많아 대선 당연히 완주할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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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5호 04면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 인터뷰

오종택 기자

오종택 기자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남은 대선 레이스를 “고난의 행군”이라고 표현했다. 지난달 30일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다. 스스로의 진단처럼 지난달 28일 대선후보로 선출된 그의 대권 가도에는 ‘문재인 대세론’이라는 큰 산, ‘배신자 프레임’이라는 덫, 궤멸 위기에 처한 보수의 몰락 등 곳곳에 지뢰가 놓여 있다.

단일화 명분 약해, 가능성 점점 희박 #내가 홍준표라면 양심상 출마 안 해 #안철수 외교정책 함께할 자신 없어 #문재인은 盧 비서실장 때 뭐했나 #“이대로 가면 보수 궤멸” 위기감에 #2011년 전대 때 대선 출마 결심 #‘낡은 보수 청산’ 창당정신 지키며 #중도·보수 합리적 선택 호소할 것

그래서인지 유 후보는 요즘 ‘기적’ ‘드라마’ 등 희망적인 단어들을 입에 달고 산다. 26년 전 야구 경기에서 8회 말 역전 홈런을 쳐낸 일화도 자주 거론한다. 유 후보는 인터뷰에서 “내가 추구하는 정치에 찬성하는 국민이 나를 찍어주면 그게 선거의 끝”이라며 대선 완주 의지를 강하게 밝혔다.

탄핵 주도, 한 번도 흔들린 적 없어

대선후보로 확정된 소감이 어떤가.

“갈 길이 험난하니까, 진짜 고난의 행군을 해야 하니까, 기쁘다기보다 지난 세월이 떠올랐다. 17년간 보수정당에 있으면서 당을 옮긴다는 생각은 꿈에도 해본 적이 없는데 바른정당이란 당을 만들고 결국 그 당의 대선후보가 됐다.”
대선 출마를 처음 결심한 게 언제인가.

“2011년 한나라당 전당대회에 출마했을 때다. 당시 이명박 정부 말기였는데 보수가 이대로 계속 가면 궤멸할 수 있겠다 싶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얘기해 ‘방향을 트나’ 했는데 결국 국민을 실망시키고 말았다. 2011년 우려했던 게 6년이 지난 지금 현실이 된 셈이다.”
왜 유 후보가 대통령이 돼야 하나.

“2017년 이후의 대한민국에는 경제와 안보 위기, 근본적인 사회 개혁에 대해 나같이 고민해온 사람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같은 고민을 하는데 나보다 훨씬 잘할 수 있는 후보를 발견했다면 지금 그를 앞장서서 돕고 있을 거다.”
‘대선 블루칩’이란 평가도 받았는데 왜 지지도 상승으로 연결이 안 될까.

“국민에게 저를 알릴 시간이 너무 없었다. 게다가 대통령 탄핵을 내가 주도했다. 새누리당 찬성표가 없었다면 탄핵이 불가능했다. 막판에 동료 의원들이 흔들릴 때도 나는 단 한 번 흔들린 적이 없다. 다만 대권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계층으로부터 상당한 피해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래도 우리 당이 배출한 대통령이지만 탄핵할 수밖에 없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대한민국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는 거니까 어떤 피해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박근혜 정부와의 공동 책임론도 제기된다.

“공동 책임을 부정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새누리당에 17년 있었던 사람이 무슨 수로 그걸 부정하나. 그렇다고 더불어민주당이 나보고 친박 아니었느냐, 당신은 부역자라고 비난하는 건 말도 안 된다. 야당이 박 전 대통령 눈치 보고 찍소리 못할 때 내가 쓴소리를 가장 많이 했다. 그렇게 따지면 노무현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후보는 그 정부의 실패를 바로잡기 위해 뭘 했느냐.”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지난달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지난달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유 후보는 그러면서 2015년 2월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되자마자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세월호 인양을 주장한 일화를 소개했다. “모두들 예산 핑계로 시간만 끌더라. 공무원연금법 개정과 국회법 처리 과정에서도 진통이 적잖았다. 나는 박근혜 정부가 국정 방향을 완전히 틀지 않으면 실패할 게 눈에 뻔히 보여 잘하시라고 한 건데 사사건건 고깝게 보였나 보다. 결국 원내대표 임기를 못 채우고 물러났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 후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을 독대하고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에 관여했더라. 대통령과 주변 세력들의 오만이 최고조에 달했던 거다.”

한국당은 머지않아 사라질 정당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인물평을 한다면.

“이미 대선후보로는 무자격자라는 표현을 썼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게 1억원의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1년6월 징역형, 2심에서 무죄가 나왔다. 우리나라는 3심제 국가고 1심에서 어쨌든 유죄가 나왔는데 나 같으면 양심상 출마 안 한다. 막말 등 나머지에 대해선 노코멘트하겠다.”
보수 후보 단일화 가능성은.

“단일화는 후보들 사이에 누가 대통령이 돼도 나라를 위해 좋은 거라는 인식이 기본 아닌가. 그런데 지금은 그 부분에서 자신이 없다. 따뜻하고 정의로운 보수, 새로운 보수가 바른정당의 본질인데 이를 100% 부정하는 단일화는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나에겐 그 가치가 생명과도 같다.”
후보 단일화를 가장 먼저 꺼내지 않았나.

“나는 처음부터 원칙 있는 단일화를 주장해 왔다. 대선판이 너무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보니 문재인·안철수 등 진보 후보들과 싸워 이길 보수 후보를 원하는 민심에 부응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얘기한 거다. 대선까지 짧은 시간이지만 후보 단일화 없이 국민이 옥석을 가려주는 방법도 있다.”
보수 표심의 향배는.

“박 전 대통령과 ‘진박’들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유권자의 마음을 바꾸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그분들이 생각을 고치도록 설득하고 호소할 의무가 제게 있고 끝까지 그렇게 할 거다. 중도보수까지 포함한 보수 전체로 본다면 진보와 보수가 여전히 5대 5는 된다고 본다. 지금 입 다물고 괴로워하는 보수 표심이 나라의 미래를 생각할 때 누가 보수의 대표선수가 돼야 하느냐는 측면에서 선거 막판까지 고민을 할 거다. 나는 그분들의 합리적 선택을 믿는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의 단일화는.

“경제나 복지에 관한 생각은 일부 공감하지만 외교안보에 있어선 같이할 자신이 없다. 이번 대선에서는 외교안보 문제가 가장 중요한 이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국민의당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를 당론으로 반대하고 있다. 그들이 한·미 동맹과 남북관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한데 지금으로선 그냥 민주당 2중대 아니냐는 생각이 드는 거다.”
문 후보를 이기려면 어떻게든 일대일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적잖은데.

“문 후보를 이기는 것만이 지고지순이라면 그를 제외한 모든 후보와 단일화 논의를 해야 하겠지만 그게 명분이 있겠느냐. 국민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것 아니겠나. 바른정당은 이번 대선만 바라보고 새로운 보수를 추구하는 게 아니다. 한국당은 지금 행태로 봐선 머지않아 사라질 정당이다. 그러면 보수의 대표는 바른정당밖에 없다. 그래서 단일화의 원칙과 명분을 늘 강조하는 거다. 요새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많이 하고 있는데, 우리가 당초 추구하려던 정치로 정면 승부하자는 생각이 강해지고 있다. 단일화하려고 대선 출마한 것이 아니다.”
끝까지 완주할 건가.

“당연히.”
홍준표·안철수라는 허들, 그 너머 문재인이란 산에 낮은 지지율과 선거비용이라는 모래주머니가 발목을 잡고 있는데도.

“물론이다. 5월 9일 투표하러 나오는 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다. 그 마음의 표들이 이미 다 정해져 있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그사이에 무슨 변화가 있을지 누가 아나. 내가 추구하는 정치에 찬성하는 국민이 나를 찍어주면 그게 선거의 끝이다. 불법자금 한 푼 없이, 있는 돈만 가지고 대선을 치를 거다.”
배신자 프레임은 어떻게 극복할 건가.

“경남지사인 홍 후보가 대구에 와서 본인이 TK(대구·경북) 적자라며 참 황당한 이야기를 했는데, 경남 분들은 굉장히 기분이 나쁠 것 같다(웃음). TK의 모든 유권자가 나를 배신자로 보진 않을 거다. 건전한 상식을 갖고 판단하는 곳, 공사 구분과 선비정신이 살아 있는 곳이 내 고향 대구다. 앞으로 자주 찾아가 정면으로 부닥칠 거다. 박근혜냐 유승민이냐, 과거냐 미래냐 선택해 달라, 시시비비를 가려 달라 요청할 거다.”

통일될 때까진 4년 중임제로 가야

유승민에게 박근혜란 어떤 존재인가.

“(잠시 고민하다) 뭐…. 인간적 안타까움만 남은 관계?”
자전적 에세이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에 나오는 ‘내가 꿈꾸는 공화국’은 어떤 건가.

“공화국이란 말이 어렵다고들 하는데, 나는 진짜 공화국을 한번 해보고 싶다. 공화국이라는 가치의 넘버원은 정의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겪으면서 사람들이 정의에 얼마나 목말라하는지 실감했다. 공화란 더불어 잘 사는 공동체다. 진박들처럼 누구의 하인이 되는 게 아니라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 것, 부모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기회를 박탈당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우리 국민이 대한민국이 부끄러워 살기 싫다고 하면 그건 조국이 아니다. 국민이 다같이 어울려 살 수 있어야 한다.”
개헌은.

“조만간 내가 오랫동안 생각해온 개헌안을 구체적으로 밝힐 예정이다. 30년 만에 헌법을 고치는데 권력 구조 하나만 뜯어고치는 걸 어느 국민이 동의하겠나. 기본권과 삼권분립, 지방분권, 경제민주화 등 건드릴 게 많다. 권력 구조는 통일이 될 때까지는 4년 중임제의 강력한 대통령제가 맞다고 본다. 순수 내각제는 그 이후에 고려할 문제다. 외교·안보·통일은 대통령이 맡고 내치는 총리가 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는 최악이다. 그렇게 해서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겠나.”
연정에 대한 견해는.

“연정은 내각제에나 어울리는 개념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공화당 의원들을 지속적으로 설득한 것처럼 대통령이 야당을 설득하고 협치를 하는 게 중요하고 대통령제와도 맞다.”
도널드 트럼프 시대의 외교 대비책은.

“트럼프 대통령의 머릿속에 있는 동아시아 정책을 끄집어내 기존의 한·미 동맹을 그대로 유지할 건지에 대한 합의를 먼저 하는 게 1번이 돼야 한다. 그다음 중국과는 구동존이를 해야 한다. 중국은 북한과 혈맹이고, 우리는 미국과 동맹이다. 이처럼 안보적 판이 다르다는 걸 서로 인정하면서 경제나 관광·한류 등 안보 이외의 분야에서 어떻게 협력해 나갈지 논의하는 게 외교 아니겠나. 사드 배치도 왔다 갔다 하지 말고 중국이 빨리 포기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경제위기를 극복할 해법은.

“후보들 중에 경제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진 뒤 모든 문제는 경제에서 발생하는데 해결책은 정치에 있다는 걸 깨닫고 정치를 시작했다. 지금 일자리 몇 개 만들겠다는 건 한가한 얘기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외환위기 직후처럼 급격한 공황이 오지 않도록 경제를 안정시키는 게 급선무다.”
대선에 뛰어든 걸 후회한 적은 없나.

“없다. 잠도 잘 잔다. 아내는 어떻게 도와야 하나 고민이 많더라. 하지만 아버지(유수호 전 의원)가 정치할 때 온 가족이 힘들었던 기억 때문에 어지간하면 가족에겐 부담을 주지 않고 싶다.”

박신홍·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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