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정상회담 직전, 북한 핵실험으로 재뿌리기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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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정상이 처음 만나는 빅 이벤트를 앞두고 북한이 핵실험으로 재를 뿌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중국의 도발 자제 촉구 잘 안 통해 #북, 자기들 스케줄대로 움직일 듯 #“트럼프가 대북 원유 차단 요구하면 #시진핑이 무시할 수 없는 상황 될 것”

외교부 핵심 당국자는 30일 “북한은 6~7일로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 전에 핵실험을 했을 때의 파장은 개의치 않고 스스로 정한 스케줄대로 도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당장 몇 시간 뒤에 핵실험을 한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도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정부는 북한이 미·중 정상회담,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4월 15일 김일성 출생 105년 등 주요 계기일을 맞아 핵실험 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고강도 전략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이라고 밝혔다.

2013년 1월 3차 핵실험 한 달 전 상황. [사진 38노스]

2013년 1월 3차 핵실험 한 달 전 상황. [사진 38노스]

지난 28일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위성 사진. 70~100명이 도열해 있다. 2013년 1월 3차 핵실험 한 달 전 상황(위 사진)과 비슷하다. [사진 38노스]

지난 28일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위성 사진. 70~100명이 도열해 있다. 2013년 1월 3차 핵실험 한 달 전 상황(위 사진)과 비슷하다. [사진 38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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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외교부는 이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다음달 6~7일 플로리다주 마라라고에서 정상회담을 갖는다고 밝혔다. 지난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처음 열리는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는 북한 핵문제가 주요 의제 중 하나로 논의될 예정이다.

이를 앞두고 북한이 도발할 경우 그간 북핵 문제를 대화와 협상으로 해결하자던 중국엔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

정부 당국자는 “중국은 이번에 여러 패키지를 선물로 들고 가 미국과의 경제·무역 분야 갈등을 완화시키려고 준비 중”이라며 “중국도 우호적 분위기 조성을 위해 북한에 여러 경로로 도발 자제를 촉구하고 있지만 북한이 잘 듣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북한이 미·중 정상이 만나기 전에 핵실험을 한다면 이는 선제타격 등을 거론하는 트럼프 행정부엔 강대강으로 맞서겠다는 메시지이자 중국에는 자신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북·중 관계를 설정하겠다는 메시지를 동시에 전달하는 모양새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외교가 소식통은 “트럼프 행정부 일부에서 제기되는 ‘북한의 생각을 파악하기 위한 탐색적 대화를 해보자’는 분위기에도 찬물을 끼얹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북한으로선 핵 능력을 최대한 완성에 가깝게 만든 뒤 이를 전제로 미국과 상대하는 북한식의 새판짜기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강준영 교수는 “북한에 지금 중요한 것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하루 빨리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라며 “미국의 대북정책이 확고해지기 전에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이란 점을 각인시키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한·미는 북한의 추가 도발 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등을 통해 원유 공급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조준혁 대변인은 “정부는 북한의 도발 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및 우리와 주요국 차원의 독자제재 등을 통해 북한 정권이 감내하기 어려운 징벌적 조치가 신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정부 당국자는 “이미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방중해 에너지 차단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보낸 데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시 주석에게 직설적으로 중국에 대북 원유 공급을 차단해 뜨거운 맛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요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중국도 미 측의 요구를 그냥 무시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6차 핵실험 이후 정상회담이 열리면 미국은 원유, 북한산 광물 수입, 중국 내 금융기관을 통해 북한이 외화를 다루는 문제 등을 놓고 중국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하고, 중국은 보다 명백하게 입장을 밝혀야 하는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차세현·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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