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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화하는 이주민, 퍼주기 아닌 나라 발전 위한 유치 돼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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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4호 06면

[창간 10주년 기획] 한국에 사는 이방인, 마이그런트 200만 <상> 인구 4%가 그들

충북 제천시 다솜고 설비과 3학년 학생들이 가스 자동 절단기를 다루며 철재 가공 작업을 실습하고 있다. 다솜고는 2012년 설립된 기숙형 이주민 기술학교다. 학생들은 3년간 기술을 익히고 관련 자격증을 취득해 취업에 뛰어든다. 우상조 기자

충북 제천시 다솜고 설비과 3학년 학생들이 가스 자동 절단기를 다루며 철재 가공 작업을 실습하고 있다. 다솜고는 2012년 설립된 기숙형 이주민 기술학교다. 학생들은 3년간 기술을 익히고 관련 자격증을 취득해 취업에 뛰어든다. 우상조 기자

다솜고 학생들이 한국 문화 이해를 돕는 수업을 듣고 있다. 우상조 기자

다솜고 학생들이 한국 문화 이해를 돕는 수업을 듣고 있다. 우상조 기자

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뒷골목 다세대주택의 옥탑방에서 만난 라트나 키르티 자크마(38)의 고향은 방글라데시 동남부 치타공 산악 지역이다. 그가 속한 소수민족 ‘줌머인’은 불교도다. 이슬람이 주류인 방글라데시에서 종교적인 탄압을 받고 있다. 자크마는 그 위험을 피해 일곱 살 때 인도로 가서 7년간 살았다. 이후 불교세가 강한 스리랑카로 거처를 옮겼다가 태국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방콕에서 만난 한국 스님과 인연을 맺어 한국으로 건너왔다. 김포시에는 이런 줌머인 120명이 산다. 어른은 대부분 공장에서 일한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은 15명이다.

유학생·새터민·난민 등 늘고 #결혼 이민자는 줄어드는 추세 #저출산·고령화로 노동력 부족 #이주민들 위한 정책 전환 필요 #통일 대비 이질적 문화 수용 연습

김창원(39)씨는 아프리카 브룬디 출신이다.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부징고 도나티엔이라는 이름의 마라톤 선수로 참가했다가 그냥 한국에 눌러앉았다. 고국의 내정 불안정 때문에 난민 신청을 한 지 7년 만인 2010년 한국 국적을 땄다. 도나티엔은 성씨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김으로, 이름은 제2의 고향이 된 창원을 따 붙였다. 김씨는 부룬디에서 온 부인과 아들 하나를 뒀다. 아들 이름은 한빈(韓斌)으로 지었다. 한국에서 빛나는 아이라는 뜻이다.

국내에 거주하는 마이그런트(이주민)가 200만 명을 넘어섰다. 출신도 다양해지고 있다. 10년 전 한국의 이주민은 외국인 노동자, 또 농촌 총각과 결혼한 중국·동남아 출신 여성이 대부분이었다. 그중 이른바 ‘다문화’로 불리는 결혼 이주자는 줄어드는 추세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2007년 3만7560건(전체 결혼의 10.9%)이었던 국제결혼은 2014년 2만3316건으로 감소했다. 농촌 총각의 수가 줄어들기도 했고 국제결혼 건전화를 위해 정부가 결혼이민 사증발급 심사를 강화해서다.

2015년 현재 외국인 결혼이민자는 총 14만4912명이다. 외국인 중 약 7%에 불과하다. 한국 국적을 딴 혼인 귀화자를 다 포함해도 약 23만 명이다.

반면 국내 거주 마이그런트의 구성은 복잡해지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57만여 명), 중국 등 외국국적 동포(21만 명), 불법체류자(14만 명), 유학생(8만 명), 북한을 탈출한 새터민, 난민 등이다. 특히 난민 신청자의 증가가 눈에 띈다. 2009년 한 해 324명이던 난민 신청자는 지난해 7542명으로 늘었다. 내전을 겪는 시리아인도 지금까지 980명이 한국에 난민 신청을 해 956명이 인도적 체류허가를 받았다. 한국에서 ‘다문화의 다문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일부 외국인에게 예산 중복 투입

이에 따라 외국인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한국에서 외국인 정책은 사실상 결혼이민자와 그 가족을 지칭하는 다문화 정책이었다. 정기선 IOM이민정책연구원 원장은 “한국의 외국인 정책은 노동자는 잠시 활용하다 내보내야 할 대상, 결혼이민자는 언어 등을 잘 가르쳐 통합시켜야 할 대상으로 봤다. 그러나 결혼이민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 교육 이상의 다양한 욕구가 생겼다. 다문화로 낙인찍지 말고 똑같은 한국인으로 대해 달라고 요구한다. 또 한국의 저출산과 고령화 등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 문제 등을 감안할 때 한국에 양질의 외국인을 영입해 정주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예산도 다문화가족으로 쏠렸다. 2012년 외국인 정책 사회통합 분야 예산 중 결혼이민자와 자녀 관련 예산이 95%(1184억원)를 차지했다. 윤광일 숙명여대 다문화통합연구소장은 “내국인 복지 소외 계층도 많은데 일부 외국인에게 여러 부처가 중복해서 예산을 투입한 낭비적 요소가 있었다. 예산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해 마이그런트 전반에 써야 하고 특히 고급인력 유치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종천 고려인강제이주 80년 안산시민위원회 사무국장은 “소련 연방에서 살던 한국인 4세들인 고려인의 아이들이 안산에만 500명이 넘는데 결혼이주민 자녀 교육이 대부분인 다문화 대책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재한 줌머인 연대 고문인 로넬 차크마나니는 “한국의 외국인 정책은 한국에 왔으니 한국 사람처럼 살라는 정도, 김치 잘 먹으면 한국 사람, ‘오 한국말 잘하시네, 한국 사람이네’ 그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유엔은 태어난 곳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체류하는 외국인을 마이그런트라고 칭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더 좋은 물질적, 사회적 조건, 더 나은 삶을 위해 다른 국가 혹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사람들과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적용된다. 불법체류자도 마이그런트에 포함된다. 불난 집에 뛰어들어 이웃을 구해 최근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LG 의인상을 수상한 스리랑카 출신의 니말(39)도 어머니의 암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5년째 한국에서 일하는 불법체류자다.

한국이 이런 마이그런트까지 챙겨야 할까. 김현숙 숙명여대 다문화통합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한국이 어려울 때 많은 사람이 미국 등으로 이민을 갔다. 한국도 받았으니 돌려줘야 하는 의무도 있고, 이에 앞서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한국의 국격이자 인도주의”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마이그런트 정책이 어려운 외국인을 무조건 받아주고 도와주는 ‘퍼주기’가 돼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많다. 나라가 잘 살기 위해, 내국인이 잘 되기 위해 선별해서 외국인을 받는 것이 이민 정책의 대전제라는 것이다. 정기선 이민정책연구원 원장은 “한국에 필요한 외국인들을 유입해 국내총생산과 1인당 소득이 늘어나는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 외국인 때문에 일자리를 잃는 사람도 있는데 외국인을 고용하는 사업주와 이런 회사를 하청업체로 둔 대기업이 그동안 저임금의 과실을 독점했기 때문에 사회 전체로 나누는 제도가 필요하다. 또 외국인 노동력을 통해 산업구조를 바꾸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누구를 어디까지 지원할지 합의 못해

정부는 이민자를 선별해 유입하고 한국 사회에 적응력이 입증된 사람은 정주 가능하도록 바뀌어야 할 시점이 됐다고 본다. 그러나 누구를 어디까지 지원해야 할지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신혜선 숙명여대 선임연구원은 “캐나다처럼 이민을 자원이라고 여길 필요가 있다. 그들을 포용하기 위해선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민은 통일을 앞두고 이질적인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연습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좋은 인력을 얻으려면 그들도 잘살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콩고 출신 난민으로 광주대 교수가 된 욤비 토나(51)는 “외국인에 대한 대책은 서류상으로만 존재한다. 가난한 나라에서 온 사람 중 제대로 된 직장 가진 사람은 나 한 명뿐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대학을 다니다 현재 일산 폐차장에서 일하는 알하리리 누르리딘(24)은 “한국 정부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받지 않았다. 정당하게 일을 하고 (한국인보다 훨씬 적은) 돈을 버는 것뿐이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우리가 이곳을 점령하려 한다고 여긴다. 전쟁만 중단된다면 내일이라도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가장 이상적인 영입 대상 외국인은 유학생이지만 그들을 끌어안기엔 제도적으로 허술한 면이 적잖다. 요르단 출신으로 경희대 교육대학원에서 한국어 교육자 과정을 밟고 있는 자키야 다우드(26·여)는 “오기 전에 한국 친구를 많이 사귈 거라고 생각했고, 전공하면서 한국 친구랑 대학 공부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 중국 사람이에요. 저는 이집트 친구와 어울리고 아랍어 쓰고 허탈해요. 학업이 끝나면 특별히 할 일이 없어 돌아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성호준·강기헌·박민제 기자, 조수영·나영인 인턴기자, 숙명여대 다문화통합연구소 윤광일 소장·김현숙 책임연구원·신혜선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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