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은 이날 낮에 풀렸다. 웨이보에는 "중국 추미(球迷·축구팬) 10여명이 캠핀스키 호텔 인근에서 새벽 2시부터 10분 간격으로 폭죽을 터뜨렸다"고 자백하는 글이 올라 온 것이다. 필자가 묵은 캠핀스키 호텔은 이날 저녁 창사 허룽(하룡)경기장에서 열린 2018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한·중전을 위해 창사에 온 국가대표팀의 숙소였다. 선수단의 안면(安眠)을 방해해 컨디션을 흐뜨리려는 속셈에서 심야에 폭죽을 터뜨린 것이 분명했다. 웨이보에는 호텔 건물 상공에서 울긋불긋한 폭죽이 터지는 장면을 담은 인증샷까지 올라왔다.
한밤중에 2~3차례 폭죽음 #"한국 선수들 수면 방해하자" #CCTV 축구해설자가 선동
이걸 보고 난 뒤 같은 호텔에 있던 축구협회 관계자 등 대표팀 지원 요원들에게 "폭죽 소리를 들었느냐"고 물었다. 대략 2∼3명에 1명 꼴로 한 명이 "잠결에 뭔가 터지는 소리가 나 잠을 깼지만 소리의 정체는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정작 걱정스런 대표 선수들은 이미 경기장으로 향한 뒤여서 얼마나 잠을 설쳤는지 확인할 순 없었다.
알고보니 이 기상천외의 '폭죽 안면 방해' 작전을 처음 제안한 사람은 중국중앙방송(CCTV)의 유명 축구 해설자인 류자위안(劉嘉遠·33)이었다. 선수 출신은 아니지만 중국의 A매치를 도맡아 해설하는 스타급 해설자다. 그는 경기 하루전날인 22일 자신의 SNS 계정에 "한국 선수단 숙소에 몰려가 밤새도록 폭죽을 터뜨리자"고 제안했다.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류의 비신사적 제안을 비난하는 댓글을 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한국 축구에 맥을 못추는 공한증(恐韓症) 극복을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일부 추미들이 안면방해 작전을 충실히 실천한 것이다.
중국인들은 화약이 고대 중국의 발명품이란 사실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민족이다. 중국이 아니라면 상상하기 힘든 폭죽 안면방해 작전과 경기결과의 상관 관계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어쨌든 23일 경기는 1대 0으로 중국팀이 승리했다.
창사=예영준 특파원 yyjune@joogn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