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팀 기 꺾어주마 … 덤벼보라는 ‘캡틴 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23일 중국 창사에서 열리는 중국과의 경기는 물러설 수 없는 한 판이다. 대표팀 주장 기성용은 “중국 관중들의 일방적인 응원이 예상되지만 한국이 아시아 톱클래스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하겠다” 고 말했다. [중앙포토]

23일 중국 창사에서 열리는 중국과의 경기는 물러설 수 없는 한 판이다. 대표팀 주장 기성용은 “중국 관중들의 일방적인 응원이 예상되지만 한국이 아시아 톱클래스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하겠다” 고 말했다. [중앙포토]

‘무거운 압박 속에서도 두려운 기색을 보이지 말라(重壓之下無懼色).’ 21일 중국 축구대표팀 훈련장인 중국 창사 허룽 스타디움 보조구장 벽면에 큼지막하게 인쇄돼 있는 글귀다.

창사대첩 자신하는 ‘대표팀 버팀목’ #말보다는 행동 ‘수평적 리더십’ #우즈베크전선 부상 숨기고 뛰기도 #“한국, 아시아 톱클래스 입증할 것” #23일 경기 JTBC서 단독 생중계

훈련 중인 중국 축구대표선수들 표정에서도 비장한 각오가 읽혔다. 마르첼로 리피(69·이탈리아) 중국 감독은 운동장 한가운데 서서 훈련 장면을 응시했다. 한 중국 기자는 “리피 감독은 일흔을 바라보는 고령이지만 여전히 열정적이다. 훈련장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소리를 지른다. 그가 입을 다문 건 경기를 앞두고 분위기 장악을 마쳤다는 뜻”이라고 귀띔했다.

중국축구협회는 2018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도중 가오훙보 감독을 경질하고 리피 감독을 영입했다. 초반 4경기에서 1무3패로 벼랑 끝에 몰리자 ‘감독 교체’로 분위기 전환을 노렸다. 사령탑 교체와 함께 파격적인 지원으로 감독에게 힘을 실어줬다. 우선 리피 감독에게 연봉 2000만 유로(약 241억원·세후 기준)를 3년간 보장해줬다. 비용은 협회가 45%, 리피 감독의 전 소속팀인 중국 프로축구 광저우 헝다가 55% 부담한다. 코칭스태프 선임은 물론, 선수의 선발과 소집에 관해서도 강력한 권한을 줬다. 리피 감독은 지난 1월 차이나컵 4개국 친선대회를 열어 20대 초반의 유망주들을 테스트했다. 지난달에는 국가대표팀(A팀) 멤버 전원을 모아 사흘간 전술훈련을 했다. 이번 한국전을 앞두고 2주 일찍 리그 일정을 중단한 채 대표팀 멤버들이 발을 맞출 수 있게 했다.

중국에서 리피 감독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다. 한국팀 훈련장에서 만난 CCTV의 왕난 기자는 “리피 감독은 세계적인 명장답게 남다른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휘어잡았다. 중국은 사실상 월드컵 본선행이 어렵지만 그가 부임한 이후 중국 축구계는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요컨대 리피 감독과 중국대표팀에게 이번 한국전은 ‘기적을 향한 출발점’인 셈이다.

감독이 앞장서서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중국과 달리 한국은 선수가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바로 주장인 기성용(29·스완지시티)이 ‘수평적 리더십’을 통해 한국팀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한다. 팀 동료 김신욱(29·전북)은 “(기성용은)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캡틴이다. 대표팀 생활이 낯선 후배들과도 스스럼 없이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배우도록 도와준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월드컵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전에서 한국선수들은 ‘캡틴 키(Ki)’의 팀 내 비중과 책임감을 절감했다. 당시 기성용은 소속팀 경기 도중 발가락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급박한 대표팀 사정을 감안해 소집에 응했다. 그는 진통제로 고통을 버티며 우즈베크전을 풀타임 소화했다. 한국은 이 경기에서 2-1로 이겼다. 수비수 김기희(29·상하이 선화)는 “우즈베크전을 준비할 때 (기)성용이 형이 아파하는 건 알았지만 발가락이 부러졌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주장의 책임감을 절감했을 뿐만 아니라, 인간 기성용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됐다”고 말했다. 기성용은 우즈베크전에서 11.72㎞를 뛰어, 한국선수들 가운데 공격수 남태희(12.59㎞)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활동량을 보였다.

기성용은 한중전을 이틀 앞둔 21일 “주장의 임무는 선수들의 어려움을 대변하는 것이다. 월드컵 최종예선은 본선행을 결정하는 중요한 무대다. 선수들 부담이 클 수 밖에 없고, 때로는 실수가 나올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선수들이 위축되지 않도록 돕는 게 내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남편과 아빠 역할을 하면서 책임감을 배웠다. 아이를 키우면 힘들기도 하지만 경기장의 나쁜 기억을 잊게 해주기도 한다”며 “딸의 애교를 보면 피로가 싹 사라진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빨리 결혼하라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중국전과 관련해 기성용은 “경기장의 일방적 분위기가 우리에게 불리할 거란 우려가 있지만, 지금 중요한 건 오히려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을 떨치는 일이다. 누가 뭐래도 한국축구는 아시아권에서는 변함 없는 톱클래스다. 이번 경기를 통해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입증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경기는 23일 오후 8시35분 JTBC가 단독 생중계 한다.

창사(중국)=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