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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드 보복 이제 시작 … 한국, WTO 제소 나설 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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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중국 전문가 안현호 전 지경부 차관

안현호(60) 전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이 “중국의 무역 보복 조치는 이제 시작”이라며 “세계무역기구(WTO) 같은 다자간 기구를 통한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대만 전례 비춰 단계별 보복 #자동차·전자 부문까지 번질 수도 #미국·중국간 타협 없인 지속될 것

안 전 차관을 16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제25회 행정고시로 공직에 입문해 지경부 산업경제실장과 제1차관,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 단국대 석좌교수를 지냈다. 지금은 삼정KPMG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안 전 차관은 공직에서 물러난 후 통상·중국 전문가로 변신했다. 2013년 『한·중·일 경제 삼국지』를 펴냈고 지난 10일 『한·중·일 경제 삼국지 2』를 발간했다. 인터뷰는 한국 경제의 최대 변수로 부상한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보복을 주제로 시작했다.

안현호

안현호

 중국 사드 보복 조치가 본격화하고 있다.

“안보 전문가가 아니라서 사드 배치 결정 과정에 대해 ‘잘했네, 못했네’를 말할 입장이 못 된다. 다만 앞으로 중국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는 전망해 볼 수 있다. 4월 미·중 정상회담, 5월 미·중 전략경제대화가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와 중국 시진핑(習近平) 정부의 관계를 정립하는 중요한 회의다. 5월이면 사드가 한국에 완전히 배치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이때 중국의 보복 조치가 절정에 이를 것이다.”
5월 이후 중국 경제 보복 조치가 사그라들까.
“그렇지 않다. 11월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가 있다. 미국과 중국간 타협이 없는 한 보복 조치는 지속할 전망이다. 중국은 매우 전략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일본과 대만에 했던 전례를 보면 중국은 단계별로 보복 조치를 강화해왔다. 크게 두 가지 가능성이 열려있다. 지금은 롯데만 겨냥하고 있지만 한국의 주력산업인 자동차나 전자 부문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중국 내수시장에서의 조치를 가능하리라 예상한다. 또 2000년 마늘파동 때 중국은 휴대전화 수입 제한 조치를 한 적이 있다. 이와 유사한 수입 제한 조치도 중국이 단행할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 WTO 규정에 정면으로 반하는 조치지만 상황에 따라 중국이 이 수단까지 쓸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한다.”
자료 : 한국무역협회(KITA)·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자료 : 한국무역협회(KITA)·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한·중 양자간에 있어 정부가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사실상 없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가지고 대응하더라도 중국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다. 다만 중국은 ‘자유무역에 반하는 보호무역를 한다’는 국제적 비판에 민감하다. WTO 같은 다자간 기구에 제소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현 정부가 검토한 바로는 당장 WTO 제소를 할 만한 소지가 아직 없다고 하는데.
“당장 WTO 제소를 하지 않더라도 ‘걸려면 걸 수도 있다’는 적극성을 보이란 의미다. 중국 정부에 당당하면서도 일관성 있는 태도를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물론 한계는 있다. 중국은 큰 소비시장을 갖고 있지만 한국은 아니다. 물건을 사는 사람보다 파는 사람이 저자세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해도 한국 정부는 우리의 이익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중장기 대책도 따라야 할 텐데.
“단기적 대응보다 중장기적 대응이 더 중요하다. 예를 들면 ‘한국산 메모리반도체, 디스플레이 없이는 중국기업이 스마트폰을 만들 수 없다’는 식의 위상을 더 확보해야 한다. 한국이 중국에 비해 확고한 비교우위에 있는 상품을 많이 만들어내야 한다. 수출기업 역시 중국 리스크를 완화시키는 쪽의 생산기지와 수출 거점 다원화가 필요하다. 인도는 한계가 있다. 6억 명 인구의 동남아가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시장이다. 국내 기업 차원에서 생산기지를 동남아로 옮기거나 동남아의 생산기지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자료 : 한국무역협회(KITA)·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자료 : 한국무역협회(KITA)·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한국 내부의 문제도 심각하다. 수출을 비롯한 주요 경제지표가 모두 악화일로다.
“한국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같은 장기 침체 초기 단계에 이미 들어섰다고 본다. 책에도 그렇게 적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원인을 연구한 자료를 많이 봤다. 저출산 고령화와 제조업 혁신의 부족, 그리고 노동생산성의 정체, 정보기술(IT) 산업에 대한 투자 부족, 고비용 사회로 접어든 데 따른 제조기지의 해외 진출 가속화. 그리고 가장 중요한 원인이 정치적 리더십의 실패다. 지금 한국의 얘기처럼 들리지 않나. 과거 일본이 그랬다.”
새 정부에 대한 주문인가.
“그렇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설명할 때도 지적했는데 가장 중요한 게 정치적 리더십이다. 독일의 슈뢰더 정부는 엄청난 여론의 반발을 무릅쓰고 개혁 정책을 실시했고 결국 정권까지 잃었다. 그 개혁의 성과는 지금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향유하고 있다. 일본엔 국민의 미움을 사면서까지 개혁을 추진한 정치인이 없었다. 한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부터 구조개혁을 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침체의 신호가 보였는데도 10년을 허송세월했다. 국민 실질소득이 정체 상태에서 마이너스(-)로 가고 있는 게 그런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이 마지막 기회다.”
왜 10년인가.
“2025년이면 한국은 초고령 사회(65세 이상 인구 20% 상회)로 간다. 세계 경제 역사를 보면 초고령 사회에서 역동적인 성장을 한 나라는 없다. 10년 안에 한국이 비교우위 수출 상품과 기술을 늘려가지 않으면 중국의 주변국·하청국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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