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월드컵 축구 예선 비상걸린 창사 … 붉은악마·추미 사이에 ‘공안 장벽’ 쌓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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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해 9월 1일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1차전 한국-중국전이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중국팬들이 오성홍기를 흔들며 응원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해 9월 1일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1차전 한국-중국전이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중국팬들이 오성홍기를 흔들며 응원하고 있다. [중앙포토]

중국 대륙의 한복판인 후난(湖南)성 창사(長沙)가 초긴장 상태다. 23일 저녁 이곳에서 한국과 중국 간의 2018 월드컵 축구 예선 한판 승부가 열리기 때문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에 따른 반한(反韓) 감정이 고조된 상태에서 열리는 축구 경기가 반한 시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로 교민사회나 관할 한국 총영사관은 물론 현지 공안당국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23일 경기서 중국 지면 예선 탈락 #사드 배치 맞물려 반한 폭동 우려 #중국 공안, 양국 응원단 접촉 차단

중국 축구는 공한증(恐韓症)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역대 전적에서 한국에 절대 약세다. 지난해 9월 서울에서 열린 1차 예선에서는 3대 2로 한국이 승리했다. 중국은 이번 한국전에서 패할 경우 예선 탈락이 확정된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나서서 ‘축구 굴기(?起)’를 부르짖고 있는 중국의 위신이 추락하는 문제로 여길 수 있다. 창사는 중국의 건국 영웅 마오쩌둥(毛澤東)의 고향에서 가깝다. 만약 한국이 중국 축구의 발목을 잡는다면 일부 중국인들이 한국을 향해 그 분풀이를 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과거 사례도 있다. 2004년 중국에서 열린 아시안컵 축구 대회 당시엔 일본팀의 경기가 열릴 때마다 반일 시위가 일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의한 폭격 피해가 커 반일 감정이 강한 충칭(重慶)에서는 일본 선수단 버스의 출입을 저지하고 극렬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베이징으로 장소를 옮겨 벌어진 중국과 일본 간의 결승전에서 중국이 패하자 흥분한 중국 관중은 일장기를 불태우고 거리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경기장을 빠져나오던 주중 일본대사관 공사의 승용차 유리창이 깨져 일본대사관이 중국 외교부에 공식 항의하기도 했다.

중국의 축구 실력은 아직 세계 수준에 못 미치지만 추미(球迷·공에 미친 사람들)라고 불리는 축구 팬들의 열성과 결집력은 유럽·남미의 훌리건에 뒤지지 않는다는 게 축구계의 정평이다.

이 때문에 중국 공안당국은 ‘007 작전’에 버금가는 안전계획을 세워 놨다고 한다. 당일 경기장에서는 붉은악마 원정 서포터스와 현지 교민·유학생 등으로 구성되는 한국 응원단은 따로 설정한 구역에 들어가 중국인 일반 관중과의 접촉이 차단된다. 경찰과 질서유지요원을 동원해 한·중 관중 사이에 ‘인의 장막’을 치겠다는 게 당국의 작전계획이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한국 응원단을 가장 나중에 퇴장시킬 계획이다. 붉은악마는 경기 직후 곧바로 창사로 이동해 출국 수속을 밟고 한국행 귀국 비행기에 오른다.

중국 공안당국이 이처럼 부심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군중시위로 인한 불상사 방지를 위해서지만, 최근 사드 보복 조치의 수위와 속도를 조절하고 있는 것과도 관련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창사를 관할하는 주우한(武漢) 총영사관에도 비상이 걸렸다. 연일 중국 공안당국 및 축구협회 등과 회의를 갖고 안전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다행히 창사에는 롯데마트 등 반한시위의 표적이 될 만한 건물이 없다. LG디스플레이 공장이 있었으나 이 역시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 정재남 주우한 총영사는 “일찌감치 태스크포스팀을 꾸리고 수시로 현지 점검을 하고 있으며 중국 공안당국과도 긴밀한 협조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며 “ 경기를 빌미로 한 불상사가 있어선 안 된다는 게 한·중 의 일치된 인식”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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