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허버드 전 주한대사 "닉슨은 격하게 백악관을 떠나지 않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토머스 허버드 코리아소사이어티 이사장은 탄핵 결정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보와 관련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퇴진을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주한미국대사를 지냈던 허버드 이사장은 탄핵 결정이 나온 다음날인 10일(현지시간)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닉슨은 탄핵에 몰렸다가 사임했지만 격하게 백악관 집무실을 떠나지 않았다”며 이같이 밝혔다.

"한국, 대선 통해 나라를 통합해야"

허버드 이사장은 “닉슨은 벌어졌던 상황을 받아들였고 다음 대통령을 지지했다”며 “미국은 (헌법에 따라 승계하는) 부통령이 있고 한국은 (헌법에 따라) 대선을 통해 새 정부를 구성하니 미국의 절차는 한국과 어느 정도는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됐던 닉슨 전 대통령은 상원의 탄핵 표결을 앞둔 1974년 8월 8일 "임기를 마치기 전에 물러나는게 끔찍하지만 대통령으로서 나는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에 놓아야 한다"며 퇴진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제럴드 포드 당시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허버드 이사장은 단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직접 거명하지 않은 채 “내가 깊이 생각해 본 것은 아니다”라고 전제해 극히 신중하게 답했다. 허버드 이사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몰렸던 2004년 당시 주한미국대사로 한ㆍ미 관계를 막후에서 조율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 사태로 첫 대국민담화를 했던 지난해 10월에도 서울에서 이를 지켜봤다. 코리아소사이어티는 미국내 한ㆍ미 우호를 증진하기 위해 활동 중인 비영리기관이다.

토머스 허버드 코리아소사이어티 이사장

토머스 허버드 코리아소사이어티 이사장

 다음은 일문일답.

탄핵을 바라보는 미국 사회의 시선은 어떤가.
“헌법 절차가 질서있게 진행된데 대해 찬사를 보낸다. 대규모의 시위가 있었음에도 대부분은 대단히 평화적이었다. 물론 박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보수 진영의 몇분이 사망해 안타깝다.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은 대단히 질서있게 헌법 절차를 진행했다는 점에서 자랑할 만 하다. 미국 내에서도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이 많은 보도를 해 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잘 알고 있다. 내 생각에 많은 미국인들은 질서 있게 진행된 과정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이 탄핵소추를 당했을 때 주한대사였는데 당시와 비교하면.
“국회가 노 전 대통령을 탄핵소추했는데 헌법재판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의 집무 복귀도 대단히 질서있게 진행됐다. 당시 탄핵 찬성은 국회 다수당인 야당에서 나왔다. 일반 여론은 노 전 대통령 편에 서 있었다. 이번엔 국회가 탄핵 표결에 들어가도록 한게 일반 여론이다. 여론은 박 전 대통령에 반대했다. 이번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혐의보다 더 심각했다고 본다.”
탄핵이 확정됐지만 한국은 여전히 찬성과 반대로 갈라져 있다.
“한국은 60일 이내에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한다. 자유롭고 공정하며 질서 있게 선거를 치러 새 지도자를 뽑아 나라를 통합하는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라를 통합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선거다. 공정한 열린 선거를 통해 의견을 표출하는 과정을 통해서다. 나는 한국이 그렇게 되리라고 확신한다.”
탄핵 이후 한ㆍ미 관계에선 무엇이 중요하다고 보는가.
“양국이 함께 가면서 매우 긴밀하게 협의할 필요가 있다. 탄핵 절차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미국 정부는 북한 문제 등을 놓고 한국과 긴밀히 협조했다. 양국 국무장관이 협의했고 미국 국방장관이 한국을 찾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대화를 했다. 다음 정부에서도 이같이 하는게 중요하다고 본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체계 배치에 야당은 신중하다.
“대선 결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일부 후보와 국회의원들이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것을 알고 있다. (야당 후보가 당선될 경우) 새 정부는 사드 배치를 들여다 볼 것이다. 그런데 새 정부가 전임 정부와 달리 결론을 내릴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김대중ㆍ노무현 대통령때 주한대사였는데 양국은 군사 협력과 동맹 관계를 놓고 매우 중요한 결정을 함께 내렸다. 나는 (대선 이후에도) 미국과 한국이 협력할 것이라는데서 예상이 다르지 않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