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DJ 핵심들이 주무른 현대비자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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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현대의 대북 비밀송금 의혹이 특검과 검찰 수사를 거치면서 현대 비자금의 정치권 유입 사건으로 확대되고 있다. 검찰이 어제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을 긴급체포하면서 '1백50억+α' 비자금 수사는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현대의 비자금을 받은 혐의자로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과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목되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 실제로 김대중 정권 5년 동안 權전고문은 막후에서, 朴전실장은 무대의 전면에서 인사와 정책 결정은 물론 국회의원 후보 공천에 이르기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실세 중 실세였다.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을 종합하면 朴전실장이 1백50억원을, 權전고문이 '+α'에 해당하는 수백억원을 현대 측으로부터 받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는 무리한 대북사업을 하면서 수천억원을 북한에 제공하고, 이에 따른 유동성 위기 등을 해소하기 위해 DJ정권 실세들에게 구명 로비를 펼친 셈이다.

이러고서도 현대의 대북송금을 '정당한 경협자금'이라고 주장할 수 있으며, "특검이 DJ정권의 햇볕정책을 훼손했다"고 강변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權전고문이 받은 돈의 상당액을 민주당 총선자금으로 지원했다는 의혹에 대해 민주당 인사들의 반응도 가관이다. "1원도 안받았다" "통장으로 들어와서 잘 모른다"고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수도권 386 후보들에게 집중지원됐을 것"이라고 떠넘기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노무현 대통령은 權전고문의 총선 자금지원으로부터 자유로운지도 의혹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전.현 정권의 핵심을 건드리는 사안이니 검찰로서도 부담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여기에 구애되지 말고 사건의 전말을 끝까지 한 점 의혹 없이 드러내야 한다. 그것이 땅에 떨어진 검찰의 위상을 바로 세우는 길이다.

또 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에 대한 가혹수사 논란은 그것대로 밝혀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1백50억+α'수사가 위축되거나 진상규명을 소홀히 해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