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M] 애절한 감성 멜로 ‘파도가 지나간 자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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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The Light Between Oceans 감독 데릭 시엔프랜스 출연 마이클 패스벤더, 알리시아 비칸데르, 레이첼 와이즈 장르 멜로, 로맨스 상영 시간 132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일 3월 9일


참전용사인 톰(마이클 패스벤더)은 홀로 살아남은 고통을 잊기 위해 외딴 섬의 등대지기로 자원한다. 천진난만한 이자벨(알리시아 비칸데르)과 결혼하며 다시 행복을 꿈꾸는 톰. 그러나 아이가 자꾸 유산되며 부부는 상심한다. 어느 날, 죽은 남자와 갓난아기를 실은 쪽배가 파도에 떠밀려온다.

★★★ 그림 같은 섬 풍광에 가슴 아픈 사연을 곁들인 러브스토리다. 마이클 패스벤더와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이 영화로 실제 연인 사이가 됐다. 시쳇말로 극 중 부부가 주고받는 눈빛만 봐도 ‘꿀 떨어진다.’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상실감 탓에 마음을 닫아 건 톰. 그가 이자벨로 인해 치유되는 과정은 두 사람이 서로의 연애편지를 읽는 장면들로 드러난다. 보낸 이의 목소리로 들려오는 편지 내레이션이 받는 이의 일상에 오버랩된다. 철저히 고독했던 톰의 일상은 이자벨의 밝고 건강한 에너지로 조금씩 차오른다. 독일 출신인 패스벤더와 스웨덴 출신인 비칸데르. 두 사람의 감미로운 영어 억양은 나지막한 음악 선율처럼 은근한 흡인력을 발휘한다.이자벨을아내로 맞으며 톰은 “최선을 다해 좋은 남편이 되겠다”고 맹세한다. 그러나 이 맹세는 이자벨이 아이를 거듭 유산하는 동안 아무 힘이 되어주지 못한다. 강직한 성품의 그가 파도에 떠밀려온 아이를 아무도 모르게 우리 자식으로 키우자는 아내의 간청을 뿌리치지 못한 이유다.
톰이 아이의 친모(레이첼 와이즈)를 알게 되면서 드라마는 다소 신파조로 흐르기 시작한다. 아이와 함께 떠내려 온 남자가 아이의 아버지고, 독일인인 그가 독일 군이라면 치를 떨던 마을 사람들에게 쫓기다 죽었음이 밝혀지지만, 아버지이자 등대지기로서가 아닌, 참전용사로서 톰의 고뇌는 그리 깊이 있게 그려지지 않는다. 1차 세계대전 직후라는 당대 분위기가 정교하게 세공되지 않은 탓에 극 중 사건의 의미와 비극성이 퇴색한 것. M L 스테드먼의 원작 소설 『바다 사이 등대』(문학동네)의 호소력 있는 서사에 다소 못 미친다고 느껴지는 까닭이다.
그러나, 오랜만에 애절한 감성 멜로다. ‘노트북’(2004, 닉 카사베츠 감독)으로 대표되는 니콜라스 스파크스 소설 원작 영화나 할리퀸 로맨스의 여운에 목말랐던 관객에겐 즐길 만한 작품이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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