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퍽’ 많이 그리웠죠, 의사 가운 잠시 벗은 미국 명문의대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 컬럼비아 의대 대학원생 '캐롤라인 박'(한국명 박은정·28)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합류해 평창올림픽 출전 위해 의대 대학원 휴학한 뒤 2015년 귀화했다. 미국 프린스턴대 여자 아이스하키 공격수로 활약했다. [사진 신인섭 기자]

미국 컬럼비아 의대 대학원생 '캐롤라인 박'(한국명 박은정·28)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합류해 평창올림픽 출전 위해 의대 대학원 휴학한 뒤 2015년 귀화했다. 미국 프린스턴대 여자 아이스하키 공격수로 활약했다. [사진 신인섭 기자]

머리엔 무거운 헬멧을 썼다. 글러브를 낀 손엔 스틱을 꽉 잡고 있었다. 무게 10㎏가 넘는 아이스하키 장비를 착용한 그는 마치 전쟁터에 나서는 전사 같았다. 하얀 가운으로 갈아입었더니 침착한 의학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한국여자아이스하키 대표팀 공격수 박은정(캐나다명 캐롤라인 박·28). 그는 미국 명문 컬럼비아대 의학 대학원생이다.

여자 아이스하키 공격수 박은정 #캐나다서 태어나 2015년 특별귀화 #대표팀 합류 묻는 협회 e메일 받고 #10분 만에 OK 답장, 병원 사표 내 #내년 평창 위해 어깨 수술도 받아 #“한국팀 약체 아니란 것 보여줄 것”

미국 컬럼비아 의대 대학원생 '캐롤라인 박'(한국명 박은정·28)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합류해 평창올림픽 출전 위해 의대 대학원 휴학한 뒤 2015년 귀화했다. [사진 신인섭 기자]

미국 컬럼비아 의대 대학원생 '캐롤라인 박'(한국명 박은정·28)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합류해 평창올림픽 출전 위해 의대 대학원 휴학한 뒤 2015년 귀화했다. [사진 신인섭 기자]

박은정은 지난달 23일 일본에서 열린 삿포로 아시안게임 중국전에서 천금 같은 동점골을 터뜨렸다. 덕분에 한국은 슛아웃(승부치기) 끝에 3-2 역전승을 거뒀다. 그동안 아시안게임에서 15전 전패를 당했던 한국은 18년 만에 중국을 처음으로 꺾고, 역대 최고 성적(3승2패·4위)을 거뒀다. 의학도의 길을 미루고 빙판에 선 박은정을 최근 서울에서 만났다.

박은정은 1989년 캐나다 온타리오주 브램턴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한국인이어서 한국말을 잘 알아듣지만 영어로 대화하는 게 더 편하다고 했다. 그녀는 어릴 적 캐나다 TV 드라마에 출연했을 정도로 깜찍한 외모를 자랑한다. 스포츠브랜드 나이키와 감기약 광고 모델로도 활약했다. 그는 기자에게 “아이스하키 유니폼과 의사 가운 모두 다 잘 어울리지 않나요”라고 물을 만큼 성격도 쾌활하다.

“엄마는 발레나 피겨스케이팅을 하길 원했지만 내 생각을 달랐어요. 오빠가 익사이팅하게 아이스하키를 하는 걸 보고 흠뻑 빠졌죠.”

8세 때 아이스하키를 시작한 박은정은 캐나다 주니어리그 미시소거 주니어 치프스에서 공격수로 활약했다. 공부도 잘해 2007년 미국 아이비리그 명문 프린스턴대 생물학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그런데 2013년 어느 날, 대한아이스하키협회로부터 날아온 e메일 한 통이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한국 여자아이스하키 대표팀에 합류할 수 있는가?’

미국 컬럼비아 의대 대학원생 '캐롤라인 박'(한국명 박은정·28)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합류해 평창올림픽 출전 위해 의대 대학원 휴학한 뒤 2015년 귀화했다. [사진 신인섭 기자]

미국 컬럼비아 의대 대학원생 '캐롤라인 박'(한국명 박은정·28)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합류해 평창올림픽 출전 위해 의대 대학원 휴학한 뒤 2015년 귀화했다. [사진 신인섭 기자]

프린스턴대를 졸업하고 뉴욕의 한 병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던 그는 의학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이었다. 동시에 남녀 혼성 아이스하키 클럽에서 뛰면서 스틱을 놓지 않고 있었다. 박은정은 “아빠가 ‘넌 코리언 캐네디언이 아니라 캐네디언 코리언’이라며 한국을 먼저 강조하셨다. 그래서 10분 만에 한국에 가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병원에 사표를 내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고 말했다.

2013년 7월 박은정은 처음 한국땅을 밟았다. 프린스턴대 후드티를 입고 스틱 한 자루만 손에 든 채 였다. 김정민 대한아이스하키협회 홍보팀장은 “박은정이 입국 다음날 시차적응도 안 된 상태로 태릉선수촌에 왔다. 곧바로 연습경기에 출전했다”고 전했다.

박은정은 2015년 특별귀화를 통해 한국 국적을 얻었다. 동시에 재수 끝에 그해 컬럼비아대 의학대학원에 입학했다. 미국 톱10에 드는 학교에 입학하고도 그는 휴학계를 냈다. 박은정은 “의사도 되고 싶고,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도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박은정은 훈련이 끝나면 의학 서적을 펼친다. 박은정은 손가락으로 나이를 세며 “서른 살에야 대학원을 졸업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는 또 “내 인생 모토가 ‘No regret(후회하지 말자)’이다. 둘 다 잘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2014년 어깨 수술을 받았다. 박은정은 “경기 중 다쳤던 오른쪽 어깨가 자꾸 빠졌다. 일상 생활에는 지장이 없어 엄마가 수술을 반대했지만 아이스하키를 잘하기 위해 수술대에 올랐다. 그리고 6개월 뒤 스틱을 잡았다”고 말했다.

미국 컬럼비아 의대 대학원생 '캐롤라인 박'(한국명 박은정·28)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합류해 평창올림픽 출전 위해 의대 대학원 휴학한 뒤 2015년 귀화했다. [사진 신인섭 기자]

미국 컬럼비아 의대 대학원생 '캐롤라인 박'(한국명 박은정·28)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합류해 평창올림픽 출전 위해 의대 대학원 휴학한 뒤 2015년 귀화했다. [사진 신인섭 기자]

박은정은 은퇴한 뒤엔 스포츠의학 전문의가 되는 게 꿈이다. 동료 선수들도 그의 꿈을 열렬히 지지한다. 동료들은 박은정에게 “롤롤(캐롤라인을 줄여 부르는 별명), 나중에 대표팀 닥터로 와줘”라고 말한다.

지난 2007년 한국은 일본에 0-29 참패를 당했다. 10년이 지난 2017년 2월, 세계 23위 한국은 삿포로 아시안게임에서 세계 7위 일본과 맞서 0-3으로 졌다. 한국과 일본은 평창올림픽 B조 예선에서 또다시 만난다. 박은정은 인터뷰 말미에 할 말이 있다며 한국어로 이렇게 말했다.

“평창올림픽에 엄마와 아빠가 오시기로 했거든요. 제가 시간 낭비한 게 아니란 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한국 여자아이스하키가 약하지 않다는 것도 보여줄 거예요.”

글=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