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뉴욕 공연의 희망과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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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비는 마이클 잭슨의 의상과 행동을 흉내내고 있었다. 비의 공연은 한국어로 더빙된 옛날 MTV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 같았다.'-뉴욕타임스(오른쪽 사진).

'비는 어셔와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비교되곤 하지만, 그들의 요즘 작품이라기 보다는 90년대 노래처럼 들린다'-뉴욕데일리뉴스.

비의 미국 데뷔 무대를 지켜본 미국 음악 전문가들의 평가는 냉정했다. 비는 한국 가수로는 처음으로 미국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이틀에 걸친 매진사태를 기록하며 공연을 성공리에 마쳤다. 국내외의 기대는 높았다. 뉴욕타임스는 공연전 비를 소개하는 기사를 두 개면에 펼치기도 했다. 공연은 끝났다. 이제 냉정한 평가를 되새김질할 때다.

◆ 비는 마이클 잭슨의 짝퉁?= 음악 칼럼니스트 존 패럴스(Jon Pareles)는 뉴욕타임스에 쓴 공연 리뷰에서 "비는 미국 가수를 흉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국내 한 음악 프로그램 PD는 "비는 물론이고 한국의 많은 가수들이 마이클 잭슨과 힙합 스타 어셔의 음악과 춤, 옷입는 스타일까지 베끼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미국 팝음악이 세계를 주도하는 현실에서 한국의 팝스타 역시 그들의 영향권을 벗어나기 힘들다. 비가 중국에선 '앞서가는 스타'일 수 있지만 미국에선 '짝퉁'으로 비칠 수 있다.

음악잡지 52스트리트 원용민 편집장은 먼저 "비가 미국 시장에 도전한다는 것은 분명히 의미가 크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도 "비의 소속사가 뉴욕 공연의 의미를 홍보하는 과정에서 다소 부풀려진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 관객의 95%는 아시아인?=뉴욕타임스는 "관객의 95%는 아시아인이었다"고 지적했다. 공연 도중 젊은 백인 여성 관객 한 사람을 골라 장미꽃을 전달하는 이벤트를 벌인 데 대해 "아마도 선택의 갈림길에서 비는 몇 안되는 비(非)아시아계 여성을 선택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관객의 절대다수가 아시아계였던 것은 사실이다. 음악은 물론이고 비가 출연한 드라마가 아시아에서 인기를 끈 덕분이기도 하다. 음악 전문지 핫뮤직 조성진 편집장은 "드라마 출연에 바빠 정작 가수로서의 자질 계발을 충분히 하지 못한 상태에서 미국에 데뷔한 건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비가 느낌이 좋은 가수임은 분명하지만 가창력이나 창법은 보강할 점이 많다. 기본 훈련에 조금 더 힘써 국제적 가수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비, 벽을 넘을 수 있을까?=m.net 음악팀장 신형관 PD는 "인종의 한계 등 넘어야 할 벽이 많다"고 지적했다. 지금껏 아시아인이 미국 시장에서 성공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일본 뮤지션 사카모토 큐의 '스키야키'가 1963년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한 게 전부다. 그러나 신PD는 "비는 신체 조건이 좋고 파이터 기질이 있어 미국 토착화에 매진하면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중음악 평론가 임진모씨는 "아직 성공 여부를 판단할 시점은 아니다"는 신중론을 폈다. 그는 "비는 매력 있는 아티스트다. 노력하면 언어의 한계도 극복할 수 있다. 자본과 마케팅 전략이 잘 결합되면 활동 반경을 넓힐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고 말했다. 뉴욕데일리뉴스의 평론가 짐 파버(Jim Farber)는 공연 리뷰에서 "비는 김치 이래 한국산으로는 가장 인기가 있다"며 "미국 유명 힙합 프로듀서를 고용한다면 (아시아계만 아니라) 백인과 흑인 등 모든 인종의 여성이 열광하게 만들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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