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5조 굴리는 기금운용본부 전주 이사 … 주민들 "퍼뜩 오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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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지난달 27일 전북 전주시 만성동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현관에서 이삿짐업체 직원이 서울 구사옥에서 가져온 사무기기를 옮기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달 27일 전북 전주시 만성동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현관에서 이삿짐업체 직원이 서울 구사옥에서 가져온 사무기기를 옮기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 지난달 26일 오후 전북 전주시 만성동 국민연금공단 산하 기금운용본부 신청사. 5t 트럭 한 대가 현관 앞에 들어서자 이삿짐업체 직원 10여 명이 부지런히 짐을 날랐다. 하지만 이곳에 입주하게 된 기금운용본부 직원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이주 초기인 탓에 교통편이나 식당 등 편의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서다. 직원 A씨는 “본부 직원만 300명이 넘는데 청사 주차장은 120면에 불과하고 시내버스는 20분에 한 대씩 다닌다”며 “식당과 커피숍 등 편의시설 대부분이 본부 건물에서 1㎞ 이상 떨어져 있어 너무 불편하다”고 말했다.

거래처서 한 달 3000명 방문 예상 #주민들은 지역경제 파급효과 기대 #교통·주거 등 편의시설도 아직 미비 #직원들 “업무 효율성 떨어져” 냉담

# 같은 날 기금본부 신청사 정문 앞에는 각종 현수막이 나부꼈다. 주변에 있는 식당이나 공업사·골프연습장 등을 홍보하는 광고물이다. 국민노후자금 545조원을 운용하는 기금본부가 입주한다는 소식에 인근 상인들과 주민들은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만성동에서 추어탕집을 운영하는 B씨는 “기금본부가 입주하면 한 달에 3000명씩 전주를 방문한다고 하니 손님도 많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기금운용본부는 지난달 28일 전주혁신도시로 이사를 마쳤다. 직원 313명이 근무하는 신청사는 1만8700㎡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8층 건물로 지어졌다. 이원희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직무대행은 “2015년 공단 본부 이전에 이어 올해 기금운용본부 이전이 마무리됨에 따라 국민연금의 전주시대가 완성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금본부의 전주 이전을 놓고 지자체와 주민, 직원들 간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지자체와 주민들은 지역경제에 대한 파급효과를 기대하며 반기는 반면 직원들은 “업무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불만스러운 분위기다.

한국은행 전북본부는 기금본부와 거래하는 국내외 위탁 운용사 340여 곳에서 한 달 평균 3000여 명이 전주를 방문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각종 회의와 관광·전시·이벤트 등 마이스(MICE)산업 지출액이 546억원, 생산유발효과는 1065억원, 일자리 창출효과는 940명에 이를 것으로 분석됐다. 전북도 역시 기금본부 이전에 따른 낙수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북혁신도시를 서울·부산에 이어 제3의 금융중심지로 육성하겠다는 게 전북도 측의 청사진이다. 이에 전북도는 지난해 2월 156억원을 들여 기금본부 인근 토지(3만6453㎡)를 매입했다. 각종 금융기관들이 입주할 건물과 숙박·편의시설 등을 지을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전해성 전북도 투자유치과장은 “기금본부를 중심으로 금융기관들이 모이면 사람과 돈이 함께 늘어나는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금본부 직원들은 대부분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은행·증권사 등이 모인다고 해도 기금본부와 직접적인 시너지를 낼 요소가 적다는 것이다. 기금본부는 전체 기금의 63.4%를 직접 운용하고, 나머지 36.6%는 위탁 운용한다. 증권·채권 등을 통해 수익을 내기 때문에 일반 개인을 상대하는 은행·증권사 등과는 업무 성격이 다르다는 게 기금본부 측의 설명이다. 교통 및 주거 등 편의시설이 완전히 갖춰지지 않은 것도 직원들의 불만을 높이는 요인이다. 기금본부 직원 C씨는 “금융기관은 서울 안에서도 여의도·광화문으로 몰리는 현상이 강한데 지방 도시인 전주로 이전함에 따라 업무 집중도가 떨어질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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