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무기로 '핵 도박' 제2 호메이니 꿈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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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메이니 가장 존경=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긴급 이사회를 열고 이란 핵 문제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부 문제를 논의했다.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 등 안보리 상임이사국은 이미 지난달 31일 안보리 회부에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이란은 눈 하나 꿈쩍 않고 있다. 그 중심에 아야톨라 호메이니(1989년 사망)의 추종자인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을 일으킨 호메이니다. 대선 승리 직후 가장 먼저 찾은 곳도 호메이니 묘소다. 가난한 제철공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이란 과학기술대를 나와 혁명수비대에 자원 입대했다. 외세를 배격해 이슬람 정신을 고양하자는 호메이니의 철학을 신봉해서다.

알자지라 방송은 "지지자들은 그를 언제라도 미국과 한판 붙을 수 있는 사람으로 여긴다"고 분석했다. BBC는 79년 혁명 당시 테헤란의 미 대사관에 인질로 잡혔던 미국인 중 일부가 "범인 중에 분명히 아마디네자드가 포함돼 있었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한 적이 있으나 본인은 부인하고 있다.

대통령 당선 뒤에도 그는 철저한 이슬람 원리주의를 따랐다. 지난해 말 관영 TV.라디오에서 서양 음악을 전면 금지한 데 이어 올 초엔 자신의 발언을 잘못 번역했다는 이유로 CNN 기자의 이란 취재를 한때 막기도 했다.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지도에서 지워 버려야 한다"는 등 매우 강경한 자세다. 테헤란 시장 시절엔 미국의 패스트 푸드점을 폐쇄하고 공공건물엔 남녀별로 승강기를 따로 설치하기도 했다. 그가 지난해 6월 대선에서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에게 역전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원리주의 정책이 국민 다수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 한 손엔 핵, 한 손엔 자원=파이낸셜 타임스는 2일자 기사에서 한 가지 의문을 제기했다. "이란이 자신들의 '벼랑 끝 핵 전술'에 서구가 항복할 것이라고 믿는 이유가 대체 뭐냐"는 것이다. 정답은 간단하다. 자원이다. 이란은 세계 4위의 산유국이다. 천연가스도 세계 2위다. 이란이 하루 400만 배럴의 석유 생산량을 절반으로 줄이면 당장 세계 경제가 요동치게 된다. 아마디네자드가 "우리가 미국을 필요로 하는 것보다 미국이 우리를 더 필요로 할 것"이라며 배짱을 부릴 수 있는 이유다. 중세 이슬람 전사가 한 손에 든 칼로 다른 손의 코란(이슬람 경전)을 지킨 것처럼, 그는 한 손에 쥔 자원으로 다른 손의 핵을 관철하려 하고 있다.

이란은 북한처럼 시간 끌기 전술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자원을 무기로 국제사회의 압력에 맞서면서 조금씩 핵 개발에 다가가는 방식이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빈민에게 국영기업 주식을 나눠주는 등 강력한 서민 위주의 정책을 취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있다. 외부 압력에 장기간 맞서려면 내부 결속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미지가 서민적인 것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핵 개발 목적이 체제 유지를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장병옥(중동정치학)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아마디네자드를 앞세운 이란 종교 지도자들이 핵 개발을 추진하는 것은 정권 안보가 절실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결국 붕괴한 것도 핵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란 고위층의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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