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바리 1번타자' 이용규, 헬멧투혼 어게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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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2017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 대표팀 한국-쿠바 평가전이 26일 서울 구로구 경인로 고척스카이돔에서 진행됐다. 이용규가 7회초 무사 1,3루때 중견수 앞 적시타로 1타점을 올리고 1루에 안착하고 있다.양광삼기자yang.gwangsam@joins.com/2017.02.26

2017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 대표팀 한국-쿠바 평가전이 26일 서울 구로구 경인로 고척스카이돔에서 진행됐다. 이용규가 7회초 무사 1,3루때 중견수 앞 적시타로 1타점을 올리고 1루에 안착하고 있다.양광삼기자yang.gwangsam@joins.com/2017.02.26

악바리.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외야수 이용규(32·한화)를 가장 잘 표현하는 별명이다. 훈련을 실전처럼, 실전을 전쟁처럼 하는 그는 눈빛부터 다른 선수들과 다르다. 그라운드에서는 미소 한 번 보이지 않고 내내 집중한다. 

2009 WBC에서 일본과의 결승전은 이용규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준 경기였다. 1-1로 맞선 6회 2사 후 그는 볼넷을 얻어 곧바로 2루 도루를 시도했다. 양팔을 앞으로 뻗어 슬라이딩을 하던 중 일본 2루수 나카지마 히로유키(오릭스)의 왼 무릎과 이용규의 왼 얼굴이 충돌했다. 헬멧이 부서질 정도로 강한 충격을 받은 그는 한동안 그라운드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이용규는 헬멧을 바꿔 쓰고 다시 그라운드에 섰다. 대표팀은 연장전 끝에 우승을 놓쳤지만 그의 투혼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용규에게 이번 WBC는 세 번째 도전이다. 2009년 대회에서 워낙 강한 인상을 남긴 덕분에 2013년에도 그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타율 0.250(8타수2안타)의 평범한 활약을 펼치는데 그쳤다. 2015년 프리미어12 때는 한국이 우승했지만 이용규는 7경기에 나서 타율 0.222(27타수 6안타)에 머물렀다. 대회 기간 탈수 증세를 겪은 탓이었다. 이용규는 "내가 한 게 없었다. 팀에 정말 미안했다"고 자책하며 "이번 WBC에서는 좋은 컨디션을 만들겠다. 팀에 공헌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이용규는 악바리처럼 WBC를 준비했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렸던 대표팀 전지훈련(2월 12~23일)에서 이용규는 가장 늦게 훈련 가방을 꾸리는 선수였다. 정해진 훈련 스케줄을 모두 소화하고도 모자라 늘 나머지 타격훈련(특타)을 자청했다. 그는 "지난 5년 동안 이렇게 몸상태가 좋은 적이 없었다. 타격감도 좋다"고 했다.

하지만 무리해서 방망이를 돌린 탓에 팔꿈치에 무리가 왔다. 이용규는 19일 요미우리와의 첫 평가전에서 3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다. 22일 요코하마전에서도 2타수 무안타로 물러났다. 25일 열린 쿠바와 평가전 선발명단에서 제외됐다가 대타로 나와 삼진을 당했다.

이용규는 26일 쿠바와의 두 번째 경기에 통증 완화 주사를 맞고 나섰다. 3회 첫 타석부터 볼넷을 얻어 출루한 그는 상대 선발투수를 흔들어 보크를 유도해냈다. 0-2로 뒤진 5회에는 1타점 적시타를 때렸고, 2-3으로 뒤진 7회 무사 2·3루에선 동점타를 날렸다. 3타수 2안타·2타점·1볼넷.

팔꿈치 부상이 악화되지 않는다면 이용규는 대표팀 1번타자로 공격의 선봉에 설 전망이다. 이용규는 리드오프로서 탁월한 무기 '커트' 능력을 갖고 있다. 콘택트 능력이 워낙 좋아서 노리지 않은 코스의 공도 파울로 만들어 낸다. 야구 팬들은 이를 '용규놀이'라고 부른다. 투구수 제한이 있는 WBC에서 '용규놀이'는 중요한 작전이 될 수 있다. 이용규는 "일부러 파울을 치는 건 아니다. 커트를 잘하려면 내 컨디션이 좋아야 한다. 타이밍을 잘 잡는다면 팀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번 WBC 1라운드(3월 6~9일 JTBC 단독 생중계)는 한국(고척스카이돔)에서 처음 열린다. 그는 "아들(도헌)에게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모습을, 아빠가 야구하고 있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여주고 싶었다. 국가대표라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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