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쌀 보조금 폐지 나섰는데 … 직불금 2배로 늘린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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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올해 정부가 농가에 보전해주는 쌀 변동직불금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쌀값 하락 행진 때문이지만 정부는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예산을 쏟아넣고 있다.

소비량 줄고 쌀값은 계속 떨어져 #올해 쌀 직불금 규모 1조4900억 #WTO 농업 보조금 상한선 넘을 뻔 #품종 대신 농가단위 지원 필요한데 #국회, 농민 반발 우려 제도개선 주저

농림축산식품부는 2016년 수확한 쌀의 변동직불금 지급단가(80㎏·1가마니 기준)를 3만3499원으로 확정했다고 21일 밝혔다. 2015년(1만5867원)의 2배가 넘고 2014년(4226원)의 8배에 가까운 금액으로, 2005년 제도 시행 이후 가장 많다. 농가 전체에 지급되는 변동직불금 총액도 사상 최대인 1조4900억원이다. 그나마 당초 계획보다 줄었다. 정부는 원래 단가를 3만3672원으로 정했지만 이 경우 총액이 세계무역기구(WTO)가 정한 농업보조총액(AMS) 1조4900억원을 초과해 단가를 173원 깎았다. AMS 상한선을 넘으면 무역 제소를 당할 수 있다.

쌀값 하락에 치솟는 변동직불금 단가

쌀값 하락에 치솟는 변동직불금 단가

변동직불금 급증은 쌀값이 떨어지고 있어서다. 쌀 직불금 제도는 2005년 정부 수매제가 폐지되면서 농가 보호를 위해 도입됐다. 논 면적에 따라 지급하는 고정직불금과 매년 달라지는 변동직불금으로 나뉜다. 고정직불금으로 ha당 100만원을 주고, 목표가격(80kg당 18만8000원)과 실제 쌀값 간 차액의 85%까지를 변동직불금으로 준다. 쌀값이 떨어질수록 변동직불금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변동직불금 지급기준인 산지 수확기 쌀값은 지난해 12만9711원까지 내려갔다. 1995년 11만원 대를 기록한 후 21년 만에 가장 낮다. 쌀값 하락은 수요보다 생산이 많아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1인당 쌀 소비량은2010년 72.8㎏에서 지난해 61.9㎏으로 줄었다. 1980년(132.4㎏)의 절반 수준이다. 반면 쌀 생산량은 2011년부터 420만~430만t을 유지하고 있다. 김태훈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쌀 소비량은 줄어들지만 벼 재배 면적과 생산량 감축폭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쌀 직불금 제도에 대한 근본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서세욱 국회예산정책처 산업예산분석과장은 “지금처럼 특정품목과 재배면적에 연계해 직불금을 지급하면 대규모 농가에 지원이 집중된다”며 “농가단위로 수입·소득에 맞춰 직불금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는 “변동직불금은 논에서 쌀 대신 다른 품목을 재배해도 주는 ‘생산 비연계’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쌀 재배 면적이 줄어 생산량을 낮출 수 있다. 농식품부도 연내 생산 비연계 방식 도입을 목표로 법령 개정 작업을 진행 중이다. 농지에 벼가 아닌 대체작물을 심으면 ㏊당 일정액의 보상금을 주는 ‘쌀 생산조정제’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제도 개선이 쉽지 않다. 법 개정에 나서야 할 국회는 농가의 반발을 의식한다. 김 연구위원은 “변동직불금제의 쌀 목표가격은 원래 3년마다 시세에 연동해 조정하기로 했지만 정치권이 농가를 의식해 2013년 오히려 현 수준으로 올렸다”고 말했다. 식량안보 차원에서 쌀에 대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김 교수는 “장기적으로 일본처럼 고품질 식용 쌀은 가격을 시장에 맡기고, 가공·사료용 쌀에만 직불금을 지원하는 전략을 써야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2014년 쌀 변동직불금제를 폐지했다. 최근엔 면적당 주는 보조금의 지급기준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세종=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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