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려·움 … 그게 뭘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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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쾌락의 발견, 예술의 발견
전영태 지음, 생각의 나무
370쪽, 1만3000원

글맛 좋고 완성도 높은 산문을 만나고 싶으신가. 그것도 우리 말로 된 사유라면…. 적지않은 이들이 품고 있을 목마름이겠지만, 그 만남이란 게 영 간단치 않다. 책은 다양한 취향과 눈높이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최근 마주쳤던 고품위 산문집은 이렇다. 영화감독 박찬욱의 '박찬욱 몽타주'(마음산책), 칼럼니스트 김경의 '뷰티풀 몬스터'(생각의 나무), 화가 김점선의 '10cm 예술 2'(마음산책), 시인 서동욱의 '일상의 모험'(민음사)….

'일상의 모험'이 인문적 깊이를 담보한 일급 산문의 한 정점이라면, 나머지 세 권은 또 다르다. 우연치 않게도 문학 밖 장르의 필자라는 점, 그러면서도 우리 시대를 호흡하는 순발력과 독자적인 스타일에서 '한 매력' 단단히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둥~ 새로 나온 '쾌락의 발견, 예술의 발견', 좋다. 썩 괜찮다. 책 표지를 장식한'사유의 미식가가 발견한 문화의 즐거움'이라는 카피는 홍보용 과장임에도 불구하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문학평론가 전영태(60.중앙대 교수)의 이 산문집은 낯선 영역들이 새롭게 만나고 부딪치는 이종격투기장이다. 성(性)과 문학, 음악과 자연과학, 동양과 서양을 끌여들이거나 전방위로 가로지르는 특유의 방식으로 담론의 성찬을 만들어낸다. 음식으로 치자면 개운한 입맛의 생선회 쪽. 따라서 무겁기보다는 가볍다. 근엄하다기보다는 상쾌하다. 때론 아슬아슬하다. 특히 성담론 대목은 '미성년자 구독불가'. 단 조야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청나라 장조(張潮)는 '아픈 것은 참을 수 있지만, 가려운 것은 참을 수 없다. 쓴 것은 견딜 수 있지만, 신 것은 견딜 수 없다'고 했다. 남자의 발정은 참기 어려운 가려움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L 쉴레인이 '지나 사피엔스'에서 말한 대로, 성욕에 대한 가장 적절한 메타포는 긁어줘야만 하는 가려움일 것이다. 가려움이 지나치면 (구약성서에 나오는)욥 같은 성인도 기왓장으로 등을 긁는 품위 없는 행동을 하지 않았던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려움…."(185쪽 요약)

장조는 조선시대 엄숙주의에 체질적으로 거부감을 가졌던 연암 박지원 같은'쿨한 사대부'들의 스승. 그런 중국 고전과 함께 생물학과 성경까지 동원해 고품위 성 담론을 풀어간다. 소설가 밀란 쿤데라에 대한 패러디도 엿보인다. 전영태 산문은 그런 식이다. 알고보니 그는 음악광. 짐작대로 바로크 음악보다는 재즈를 즐긴다. 바로크 음악에는 "위장한 위선과 허세"(68쪽)가 거슬리기 때문이다.

때문에 거쉬인의 명곡 '섬머 타임'에 대한 오마주(헌정)인 첫 에세이 '마음 속에서 펄쩍 뛰어오르는 노래'는 기분 좋게 읽힌다. 빌리 할러데이.새러 본.엘라 피츠제랄드 등 불멸의 재즈 가수 '빅3'로 시작하기 때문에 음악 얘기인가 싶더니 겅중겅중 뛴다. 엉뚱한 곳으로.'루시'라는 300만년 전 아프리카의 원인(猿人), 비틀스의 노래 '루시 인 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드', 그리고 "음악은 정신의 숨은 형이상학"이라고 했던 쇼펜하우어…. 대단한 박람강기다.

책 서문에서 저자는 짐짓 '수상록'의 몽테뉴를 언급한다. 돈.지위.지식의 3박자 중 하나만 빠져도 좋은 에세이는 나올 수 없다는 말을 인용한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난 소감은 "그거 말 되네"쪽이다. 박람강기가 때론 느끼한 허세로 다가오지만, 그것도 내공은 내공이다. 한편 저자는 서울대 졸업 뒤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장르? 가늠하신 대로 평론 쪽이다.

조우석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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