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특검의 무리수 … 이제 ‘깜깜이 영장’까지 치는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어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 지난달 19일 첫 번째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26일 만이다. 일단 특검이 청와대 압수수색과 박근혜 대통령 대면조사 불발로 수사가 교착 상태에 빠지자 삼성과의 정면 대결이라는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수사 기간 만료가 2주밖에 남지 않고 수사 기간 연장도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나온 고육지책이기도 하다.

승부수엔 위험이 따른다. 만약 영장이 또 기각되면 특검의 무리한 수사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관건은 그동안 특검이 새 증거들을 얼마나 확보했느냐에 달려 있다. 1차 영장 청구 때 특검은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을 대주주인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찬성토록 청와대가 도와준 대가로 이 부회장이 미르·K스포츠재단과 최순실 모녀 등에 총 433억원의 뇌물을 줬다며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검은 “기절할 만한 증거들이 많다”고 했다. 그러나 법원은 대가 관계와 부정한 청탁에 대한 소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뇌물수수자인 대통령 조사 없이 공여자인 기업부터 처벌하는 건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기각했다. 수사가 미진하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번에 특검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후 강화된 삼성SDI의 순환출자 고리 해소 과정에서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지시해 특혜를 준 부분을 뇌물공여 혐의에 추가했다고 한다. 삼성이 최순실 모녀에게 송금한 명마 구입비와 관련해선 국외재산 도피 혐의의 공범으로도 의율했다. 특검 주변에선 “지난번에서 크게 진전된 내용이 없다”는 평가가 나왔다. 특검은 이날 영장 재청구 사유마저 밝히지 않아 ‘깜깜이 영장 청구’라는 비난을 자초했다.

이제 관심은 16일께 열리는 영장실질심사에 쏠리게 됐다. 법원은 이번에도 법과 양심에 따라, 오로지 증거만으로 현명한 판결을 내려야 할 것이다. 더불어 지난번 조의연 영장전담 부장판사에 대한 “삼성 장학생 출신” 등의 마구잡이 인격살인이 재발돼서도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