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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가 작업장 완전 장악 … 현대차, 제2 한진해운 될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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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송호근 교수의 현대차 진단

현대차 노조원들이 2013년 8월 울산공장에서 임단투 승리를 위한 중앙쟁의대책위 출범식을 하고 있다. 노조는 이날도 오전·오후로 나눠 부분파업했다. [뉴시스]

현대차 노조원들이 2013년 8월 울산공장에서 임단투 승리를 위한 중앙쟁의대책위 출범식을 하고 있다. 노조는 이날도 오전·오후로 나눠 부분파업했다. [뉴시스]

“노조가 작업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철옹성이다. 이게 현대자동차를 위기로 내몰고 있다.”

울산 현장서 50명 만난 뒤 작심비판
작업장 권력, 노조 90 경영은 10
중간 관리직은 대의원 눈치만 봐

평균 연봉 9600만원이 적절한가
생산성 낮은데 성과급은 왜 같나
다른 공장 이익 편취·편승한 것

일은 적게 돈은 많이 고용은 길게
이 목표가 전부 … 공익 저버렸다

이런 도발적 언사를 누가 구사할까. 전경련 간부? 극우 정치권 인사? 아니다. 바로 저명한 사회학자 송호근(61) 서울대 교수다.

송 교수가 신간 『가 보지 않은 길』(나남)을 펴냈다. 기자간담회를 14일 열었다. ‘한국의 성장동력과 현대차 스토리’라는 부제처럼 현대자동차를 매개로 한국 경제의 과거와 현재를 탐색한 책이다. 하지만 이날 송 교수는 작심한 듯 현대차 노조를 향한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탄핵과 대선에만 시선이 쏠려 있다. 정권이 바뀐다고 문제가 해소될까. 기업 현장과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본질을 외면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여태 현대차 노조가 귀족·강성 노조라는 쓴소리를 들어온 건 사실이다. 정작 이번 책의 파괴력은 학술적 비판에 머무르지 않고 생생한 사례와 육성을 통해 현대차의 적나라한 모습을 들춰냈다는 점에 있다. 이를 위해 송 교수는 지난 1년간 울산을 숱하게 찾았고 해외 공장도 방문했다. 임원부터 말단 직원까지 50여 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여기에 특유의 통찰력으로 현대차, 아니 한국 제조업의 현주소를 직조해 냈다. “노조의 반격, 기다리고 있다”며 일전을 각오했다.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지난해 한진해운 사태를 겪었다. 조선산업 구조조정을 위해선 12조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과연 그 돈을 쏟아붓는다고 회생할까. 현재 산업 현장의 도덕성이 얼마나 붕괴됐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어설픈 처방이 나오는 거다. 아마 12조원은 ‘도덕적 해이’에 그대로 빨려 휩쓸려 갈 게 틀림없다. 현장을 그대로 둔 채 정책을 양산해 봤자 소용없다. 이는 조선뿐만 아니라 석유화학·해운 등에도 적용된다. 현대자동차도 마찬가지다.”
현대차를 살피기 위해 울산을 선택한 건가.
“1981년부터 울산에 들렀다. 그때는 어촌이었다. 지금은 영국 버밍엄에 버금갈 만큼 세계적인 산업도시로 변모했다. 36년 만에 이룩한 도약이다. 흥미로운 점이 있다. 노동자 타운이지만 노동자 행색을 찾아보기 힘들다. 좋은 학군으로 이사 가고자 하는 욕구도 강하다. 이들의 계급의식은 과연 만들어진 것인가. 유례없는 성공 이면에 유례없는 모순을 갖고 있다.”
유례없는 모순이란 무엇인가.
“대한민국은 과거의 성공요소가 부메랑이 돼 발목을 잡곤 한다. 현대차의 첫 번째 모순은 ‘기술 주도적 포디즘(Fordism·컨베이어벨트 대량생산체제)’이다. 최고 기술력과 단순 노동력의 결합이다. 이런 방식에선 일본처럼 숙련된 노동력이 나오지 못한다. 장인의 배출보다 노조의 통제가 강화될 수밖에 없고, 이를 경영진이 묵인해 왔다. 협력업체까지 총동원하는 한국적 시스템으로 세계 진출까지 성공했지만 한계에 이르렀다.”
또 다른 모순은.
“사라진 열망이다. 여태 노동계급은 열심히 일해 단순 육체노동에서 벗어나 신분 상승을 꾀했다. 그렇게 달려왔고 일정 정도 성공했다. 하지만 지금은 정체성 혼란기다. 회사에선 노동자이지만 작업복만 벗으면 평범한 중산층 가장이다. 다음 목표를 노정하지 못한 시기에, 이를 내부에서만 연소시킨 셈이다. 노동운동이 본래 궤도에서 이탈해 사회적 고립을 자초했다는 얘기다. 계급적 연대(class solidarity)가 아닌 내부자 연대(insider solidarity)로 변질돼 갔다.”
내부자 연대란 무엇인가.
“IMF 외환위기 이듬해 현대차는 1만 명에 육박하는 노조원을 정리해고했다. 그러고는 몇 개월 뒤 기아차를 인수했다. 불신과 트라우마가 노조를 전투적으로 만들었다. 이후 현대차 노조는 이익 극대화를 위해 외부자를 기꺼이 희생시키는 전략을 구사해 왔다. ‘일은 적게’ ‘돈은 많이’ ‘고용은 길게’라는 세 가지 목표가 전부였다. 이 와중에 작업장은 노조 대의원들에 의해 완벽히 장악됐다. 노조 대 경영의 권력비율은 90대 10이다. 중간관리직은 그저 눈치를 보기만 한다 .”
그래도 이만큼 성공하지 않았나.
“현재 현대차 노조 조합원은 4만8000명이다. 직원 평균 연봉은 9600만원 이다. 이게 적절한 기여분일까. 난 동의하기 어렵다. 외국 공장에서의 이익을 가져왔을 수 있다(편취 가능성). 또 아산 공장의 생산성은 울산보다 높다. 하지만 성과급은 동일하다. 전형적인 편승이다. 노조와의 협의를 거치지 않고는 결코 해고할 수 없지만 불가피한 경우 비정규직을 활용키로 했다. 고용 안정을 위해 노동계급 연대를 스스로 파기한 것이다. 공익을 저버리는 노조는 계급조직이 아니다. 이익단체다.”
대안은 있는가.
“현대차는 동호회만 60여 개에 이른다. 내부에서만 소통한다. 자칫 외부 활동을 했다간 왕따당하기 일쑤다. 이를 깨고 밖으로 나와야 한다. 시민사회와 교류해야 한다. 불우 이웃을 돕든, 소비자·환경단체에 가입하든 말이다. 외부의 시각을 수용해 내부에 심어야 한다. ‘기업시민’으로 진화해야 한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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