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재용 재소환, 무리한 ‘엮기 수사’ 아닌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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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어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재소환해 조사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이 부회장에 대해 청구된 구속영장이 기각된 지 25일 만이다. 당시 법원은 ‘뇌물죄의 요건이 되는 대가 관계와 부정한 청탁에 대한 소명과 구체적 증거가 미흡하다’는 취지로 기각했다. 한마디로 부실한 수사와 무리한 죄 적용이라는 얘기였다.

 그런데 특검팀은 구속영장 재청구 가능성을 흘리며 이 부회장을 또 소환했다. 영장 기각 이후 추가로 발견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 수첩과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새로운 증거가 나왔다고 주장한다. 삼성SDI의 순환출자 해소 과정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 정유라씨에 대한 30억원대 명마 ‘블라디미르’의 우회 지원이 그것이다. 특검은 이런 일들이 돈을 매개로 청와대와 삼성 사이에 특혜가 오간 것이니 뇌물죄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특검이 어떤 증거를 확보했는지 몰라도, 지난번처럼 몇몇 증언을 토대로 정황 증거에 매달린 채 뇌물죄라는 프레임을 짜놓고 무리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뇌물죄가 성립하려면 공여자와 수수자에 대한 확정적 물증이 있어야 한다. ‘그럴 수도 있다’는 정황 증거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돈을 건넨 대가성이 충분히 구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부인하는 공여자를 막무가내로 다그치는 것은 수사 원칙에 반한다. 받은 사람에게는 확인조차 못하는 상태에서는 더욱 그렇다. 청와대 압수수색에 실패하고 박 대통령 대면조사가 좌절된 것이 핑계가 될 수는 없다. 이는 특검이 책임져야 할 수사기법의 문제이기도 한다.

 수사는 누구 앞에서든 공정해야 한다. 글로벌 기업 총수라고 해서 봐줘야 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반기업 정서에 기대 ‘네 죄를 네가 알렸다’는 식의 ‘사또 재판’으로 무리하게 엮으면 안 될 일이다. 구속영장 청구 여부는 더더욱 신중해야 한다. 법원에서 알아서 판단하라고 상습적으로 부담을 떠넘겨서는 곤란하다. 이 부회장을 표적 삼아 반드시 구속시키겠다는 특검의 지나친 집착은 이미 ‘오기 수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