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사흘간 공개 행사만 10건 … 대선주자급 일정 황교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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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6일 판교 마이다스아이티에서 중소기업인 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사진 김성룡 기자]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6일 판교 마이다스아이티에서 중소기업인 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사진 김성룡 기자]

“나중에 기회가 되면 얘기하겠다.”

야권 “대행 넘어선 대선 행보”

6일 국회에 출석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자신을 에워싼 기자들이 대선 출마 가능성을 묻자 한 답변이다. “그 기회가 언제냐” “지지율이 16%를 넘었다” “국민 혼란이 증가하니 명확하게 입장을 밝혀 달라”는 잇따른 질문에 그저 그는 웃었다. 뒷걸음질치는 기자들에게 “갑시다. 길 막혀 있다”고만 했다. 최근 국회에서 열린 교섭단체대표 연설에 참석할 때마다 황 대행과 기자들이 벌이는 ‘실랑이’다. 그는 말 그대로 소이부답(笑而不答)이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의 교섭단체대표 연설 때도 질문하는 기자들에게 “문 조심하라”는 정도의 말만 했다. 말은 아껴도 발걸음은 “권한대행을 넘어 대권을 염두에 둔 행보”(야권)란 해석을 낳고 있다.

그는 이날 오후 경기도 성남 판교신도시의 한 정보기술(IT) 업체를 찾아 ‘우수 중소기업’들과 현장간담회를 했다. 그는 “기업과 근로자가 성과를 공유하는 것은 기업경쟁력 제고에 있어 혁신적 사례라 할 수 있다”며 “정부는 기업이 근로자와 성과를 공유하면서 함께 성장해 나가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직장보육시설 등 근로자 복지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시행하고 있다”며 “앞으로 근로시간 단축과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컨설팅 실시 등 기업의 근무 여건 개선 노력에 대한 지원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이날만이 아니다. 그는 연일 대선주자와 비슷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대행 업무를 맡은 지난해 12월 9일 이후 외부 공개 일정은 모두 125건이었다. 하루 평균 2건이 넘는다. 특히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사퇴 이후 지지율이 오른 2월 1일부터 사흘간 일정이 10건이었다. 스마트공장 현장 방문, 매티스 미 국방장관 접견, 사회적 약자 관계장관 회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 외교·국방·민생을 넘나드는 행보였다.

하지만 황 대행은 여야 4당이 본회의에서 의결한 10일 대정부질문 출석 요구는 거부하고 있다.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대통령 코스프레에 빠져 국정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인지, 대선후보 지지율 발표에 취해 본분을 망각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장제원 바른정당 대변인도 “모호한 태도로 대선 출마 가능성을 열어놓으면 국가가 얼마나 많은 피해를 보겠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특검의 청와대 압수수색 요청에도 사실상 협조하지 않기로 했다. 총리실 고위 관계자는 “법리적 판단은 대통령 비서실장과 경호실장이 해야 한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에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황 대행은 박근혜 대통령의 호위무사가 아니다”고 쏘아붙였다.

대선 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 은근히 즐기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건 국가지도자의 처신으로 당당하지 않다. “출마하지 않겠다”는 말을 할 수 없다면, 즉 대선에 출마할 생각이라면 대통령 권한대행이란 ‘공공재’를 유리한 쪽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글=박성훈 기자 park.seonghun@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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