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권 정치쇼크 후 열 달쯤 돼야 경제 살아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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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불확실성은 언제나 내수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정치적 사건이 발생한 후 3개월이나 6개월에 걸쳐 경기가 추락했고 9개월이 지나야 U자 모양으로 회복했다’.

노태우 수서 비리, MB 광우병 등
정치 사건 때마다 고용·투자 흔들
최순실 충격, 트럼프 불확실성 겹쳐
내년 초에나 U자형 회복 가능성

한국은행이 이런 내용을 담은 ‘통화신용정책 보고서’를 31일 국회에 제출했다. 1990년 노태우 정권의 수서택지 비리사건부터 2008년 이명박(MB) 정부 때 광우병 시위, 2012년 18대 대통령선거까지 정치 불안을 가중시킨 굵직한 사건이 실물 경기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분석한 결과다.

정치적 불확실성은 고용시장, 산업 생산, 투자, 소비 전 영역에 충격을 줬다. 한은에 따르면 정치적 사건 발생 당시 평균 2.15%였던 취업자 수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은 3개월 후 1.23%, 6개월 후 1.17%로 고꾸라졌다. 9개월이 지나서야 1.42%로 반등했다. 사건 발생 전 수준으로 올라선 건 1년 후(1.86%)다. 민간 소비, 설비 투자, 산업 생산 증가율도 똑같이 U자 형태로 움직였다. 정치 불안을 부추긴 사건이 발생하고 경기 회복에 걸린 기간도 최소 6~9개월로 엇비슷했다.

제조업보다 자영업·일용직에 더 큰 충격

고용시장 내에서도 자영업·임시일용직에서 정치 불안으로 인한 충격이 더 크게, 오래 나타났다. 제조업보다는 서비스업의 타격이 컸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수출 비중이 커 해외 여건에 영향을 많이 받는 제조업은 정치적 불확실성과 관계가 미미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한은은 “글로벌 불확실성 요인이 국내 여건 악화와 맞물릴 경우 파급 영향이 예상보다 클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 경제상황도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게 한은의 시각이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나 돼야 한국 경제가 ‘최순실 충격’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경기 회복까지는 더 긴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한은은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외풍과 맞물리면 경기는 과거(9개월)보다 오랜 기간 침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은이 지적한 글로벌 불확실성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추가 기준금리 인상 ▶미국 신정부 출범에 따른 정책 급변 ▶세계 보호무역주의 강화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9개국) 금융사의 부실 확대 ▶신흥국 자금 유출 등이다.

한은은 이날 공개한 통화신용정책 보고서를 통해 “성장세 회복을 뒷받침하기 위해 통화정책의 완화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기존 방침을 다시 밝혔다. 기준금리를 올리는 결정은 당분간 하지 않겠다고 시장에 보내는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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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금리 올라도 한은 뾰족한 수 없어 고민

문제는 시장 금리다. 한은은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인 연 1.25%로 묶어 놓았지만 시장 금리는 이미 상승세를 타고 있다. 한은 통계를 보면 지난해 10~11월 두 달간 주택담보대출 금리(신규 취급 기준)는 평균 0.36%포인트 올랐다. 이 기간 변동금리형(0.26%포인트)보다 고정금리형(0.47%포인트) 대출 이자율이 더 뛰었다. 변동금리형 대출 이자율은 단기 시장 금리(은행채 3~6개월물), 고정금리형은 장기 시장 금리(은행채 5년물 등)를 따라 움직인다. 미국 기준금리를 비롯한 국제 금리가 장기적으로 오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보니 단기 금리보다 장기 금리가 더 뛰었다. 그렇다고 변동금리형 대출이 안전지대가 될 순 없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시장 금리 상승은 신규 취급 가계대출뿐만 아니라 일정 시차를 두고 기존에 나간 변동금리 가계대출의 금리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시장 금리 상승에 따른 기존 대출자의 추가 이자 부담은 변동금리 대출을 보유한 가계를 중심으로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렇다고 한은이 당장 ‘행동’에 나설 상황도 안 된다. 채현기 KTB투자증권 매크로팀장은 “한은은 가계부채 증가세와 환율의 변동성에 집중하며 기준금리 동결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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