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영장 기각] 이례적으로 길었던 이재용 영장 기각 사유-수사 정도까지 판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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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조의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밝힌 기각 사유는 ‘이례적’으로 장문이었다. 그는 “뇌물 범죄의 요건이 되는 대가관계와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한 현재까지의 소명 정도, 각종 지원 경위에 관한 구체적 사실관계와 그 법률적 평가를 둘러싼 다툼의 여지, 관련자 조사를 포함해 현재까지 이뤄진 수사 내용과 진행 경과 등에 비춰 볼 때,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타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영장 발부 사유나 기각 사유에 대해 담당 판사는 간단하게 이유를 밝힌다. 피의자가 도주할 우려가 있거나 증거를 없앨 가능성을 가장 크게 본다. 또 사안이 얼마나 중대한지도 하나의 기준이 된다.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이번 기각 사유는 조 판사가 상당히 고심한 흔적을 남기기 위해 작성한 것 같다”며 “수사가 얼마나 진행됐는지 등 본격적인 재판 과정에서 다툴만한 내용까지 세심하게 파고 들었다”고 해석했다.

지난해부터 영장전담 사건을 맡은 조 부장판사는 지금까지 네 차례 기업 총수에 대한 영장을 기각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해 롯데그룹 비리의혹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횡령ㆍ배임 등 혐의로 신동빈 회장에 대해 “범죄 혐의에 대해 법리상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디젤 차량 배출가스 조작 혐의를 받은 박동훈 전 폴크스바겐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기각 사유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수사 진행 경과와 주요 범죄혐의에 대한 소명 정도 내지 방어권 보장의 필요성 등에 비춰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6월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해 존 리 전 옥시코리아 대표의 구속영장도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자료에 의한 범죄 혐의의 소명 정도와 구체적 사실관계에 대한 다툼의 여지 등에 비춰 볼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모두 평이하게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라는 일반적 설명보다는 ‘범죄 혐의의 소명 정도’를 기준으로 내세웠다.

문병주 기자 moon.byung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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