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한미군 빼내도 막기 어려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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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左)과 미국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19일 미국 워싱턴에서 첫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를 열었다. 양측은 3년여 동안 끌어온 최대 난제인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했다고 공동 발표했다.[워싱턴 AFP=연합뉴스]

반기문 외교부 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19일 워싱턴에서 한 '제1차 양국 장관급 전략 대화'와 여기서 채택된 공동 발표문은 앞으로 한.미 관계의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양국 간에 끊임없이 논란이 돼 왔던 핵심 쟁점들이 모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의 지위와 역할을 규정하는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 문제를 비롯해 한.미 동맹, 테러와의 전쟁에서의 한국 역할, 미국식 자유와 인권의 전 세계적 확산,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책 등 굵직한 현안들이 논의되고 합의가 도출됐다.

반 장관은 이날 오전 워싱턴 국무부 청사 앞에서 "우리는 이제 양국 동맹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리려고 한다"며 이번 회담에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의아스러운 점도 있다. 합의 내용 중에는 그동안 한국 정부가 취해 왔던 외교적 입장을 감안할 때 설득력이 떨어지는 대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 짐 벗은 미국=이번 회담을 통해 미국은 여러 가지를 챙겼다. 무엇보다 한국 정부로 하여금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수용하도록 했다. 물론 미국은 "전략적 유연성의 구체화와 관련, 미군이 동북아 지역 갈등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대목을 집어넣어 한국의 체면은 살려줬다. 하지만 일단 고삐가 풀린 이상 한국이 미국의 주한미군 병력 운용에 문제를 제기할 기회는 별로 없을 것으로 보인다.또 공동발표문 첫째 항목에는 "양국이 자유와 민주적 제도, 그리고 인권을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협력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전 세계적 자유의 확산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기 취임사에서 밝힌 내용이고, 북한은 이에 대해 '정권 교체 시도'라며 강력히 반발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은 이번 회담을 통해 한국으로부터 자유의 확산에 협조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한국은 그동안 핵물질을 실은 배를 공해 상에서 나포하겠다는 미국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이 북한을 자극한다며 사실상 반대해 왔다.

하지만 양국은 이번에 "대량살상무기와 그 운반수단의 확산을 막기 위한 국제안보 협력체제의 실현을 위해 공동 노력한다"고 합의했다. 사실상 PSI에 동의한 것이다.

◆ 한국은 뭘 얻었나=크게 두 가지다. 우선 미국이 전략적 유연성을 구체화할 때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밝힌 대목이다. 다른 하나는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강력한 한.미 동맹을 유지하고, 안보 협력을 위한 다자간 지역협력체를 만들어간다는 합의다. 하지만 미국이 챙긴 실리에 비해 한국이 얻은 것은 적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동발표문 내용이 한국의 기존 입장과 모순되는 부분도 있다.

한국은 그동안 북한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며 유엔에서 북한 인권결의안이 상정될 때마다 기권해 왔다. 하지만 이번 발표문대로라면 한국은 앞으로 인권신장을 위해 미국과 공동 보조를 취해야 한다. 또 PSI에는 불참했으면서도 발표문에는 미국과 같이 노력하는 것으로 돼 있다.

◆ 한.미 북한 핵 인정했나=공동 발표문에는 "북한의 핵 무기와 핵 프로그램으로부터의 위협을 종식시키기 위해"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동안 양국은 예외 없이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라는 표현을 써 왔다. 북한이 핵 무기를 가졌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는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공동 선언문엔 핵무기(nuclear weapons)란 용어가 처음 등장해 이런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 바로잡습니다

1월 21일자 1면과 5면 반기문 외교부 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19일 워싱턴에서 회담한 것을 다룬 기사.표에서 회담 명칭을 '한.미 외무장관 회담''첫 고위 전략대화''한.미 외교장관 전략회담' 등으로 달리 표기했으나 공식 명칭은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가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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