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장만으론 취직 힘들다…4년제 대졸자 31만 명 실업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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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소재 대학의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공진아(가명·29·여)씨는 지난해 들어간 광고회사에서 쫓겨났다. 월급 150만원을 받고 매일 12시간 이상 일했지만 수습기간이 끝나자마자 실업자 신세가 됐다. 공씨는 쉽게 잘리지 않는 공무원이 되려고 ‘공시(공무원시험)’에 매달리고 있다.

실업자 100만 명 시대다. 11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실업자 수는 101만2000명이다. 실업자 수가 연간 기준으로 100만 명을 넘어선 건 통계청이 실업자 분류 기준을 현재(4주 이상 구직활동을 한 미취업자)처럼 정한 2000년 이후 처음이다.

실업자 100만, 청년실업률 9.8%
복지 괜찮은 제조업 고용 감소
고학력 눈높이 일자리 줄어들어
“대학교육 질 높여 고급인재 배출
중소·중견기업들 제대로 키워
대기업 수준 연봉 일자리 만들어야”

이런 고용 한파에 직격탄을 맞은 건 청년이다. 지난해 청년(15~29세) 실업률은 9.8%다. 청년 실업자 수는 43만5000명이다. 모두 역대 최고 수준이다. 특히 고학력자 실업자의 급증이 눈에 띈다. 지난해 대학(전문대 포함) 졸업 이상의 학력을 지닌 구직자 중 45만6000명이 실업 상태에 놓였다. 1년 전보다 3만1000명 늘었다. 4년제 대학 졸업생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난해 4년제 대학 졸업 이상 구직자 중 31만6000명이 실업자다. 전년(27만8000명)보다 3만8000명 늘었다. 전문대 졸업자의 경우 실업자 수는 2015년 14만6000명에서 지난해 14만 명으로 다소 줄었다.

고학력 실업자가 늘어난 건 대학 졸업장을 받아 든 청년들의 눈높이를 맞출 만한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어서다. 복지 수준이 양호한 정규직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대표적인 업종은 제조업이다. 지난해 제조업 취업자 수는 총 448만1000명으로 1년 전보다 5000명 감소했다. 제조업 취업자 수가 줄어든 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이후 7년 만이다. 빈현준 통계청 고용통계과장은 “조선업 등의 구조조정 영향으로 제조업 취업자가 줄고 있다”며 “제조업 취업자 감소는 청년 실업 증가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신 도소매, 숙박·음식, 건설업 취업자 수는 각각 4만4000명, 2만2000명 늘었다. 일용직·비정규직이 많은 분야다. 영세자영업자도 늘었다. 지난해 고용원 없는 1인 자영업자 수는 1년 전보다 2만7000명 증가했다.

해법은 좋은 일자리 늘리기다. 이와 관련, 정부는 올해 청년층이 선호하는 공무원 및 공공기관 직원을 6만 명 신규 채용하기로 했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졸자가 만족할 만한 직장이 대기업과 공공기관밖에 없다”며 “양질의 중소·중견기업을 키워 대기업과 임금 격차가 없는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력 인플레이션’ 해소와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도 필요하다. 지난해 4월 기준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69.8%다. 낮아지는 추세이긴 하지만 주요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대학 진학률은 2014년 현재 41% 수준이다. 일본은 37%, 독일은 28%다. 최경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인적자원연구부장은 “대학이 최고급 인재를 배출하지 못하고 평균 수준의 인력만 양산하고 있다”며 “경기가 부진할수록 대졸 ‘평균 인력’의 취업은 더욱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최 부장은 “ 높은 대학 진학률을 줄이는 노력과 함께 대학이 고급 인재를 배출할 수 있도록 대학 경쟁력 강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장원석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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