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상 휩쓰는 AI…싱톈·딥젠고도 프로기사 상대 90% 승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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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알파고(AlphaGo)’로 대표되는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의 성장세가 무섭다. 선두주자인 알파고는 말할 것도 없고 AI 바둑 프로그램 대부분이 올해 안으로 프로기사를 압도할 전망이다.

빠르게 진화하는 바둑프로그램
싱톈과 대국, 커제 6패 박정환 4패
딥젠고도 조치훈에게 패배 안겨
한국 ‘돌바람’은 프로 반열 못올라
“모든 AI 바둑이 곧 인간 넘어설 것”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AI 바둑 프로그램은 단연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다. 세계 최초로 프로기사를 꺾은 ‘알파고’는 현재 프로기사와 두 점 이상 기력 차이가 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원성진 9단은 “(현재 ‘알파고’의 실력이라면) 초속기의 경우에는 두 점 이상, 일반 대국은 선에서 두 점 가까이 프로기사와 실력 차이가 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알파고’가 이렇게 짧은 기간에 급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구글 딥마인드 측이 최초로 AI 바둑 프로그램에 도입한 ‘딥러닝(Deeplearning)’ 기술 덕분이다. ‘알파고’ 이전까지의 AI 바둑 프로그램은 몬테카를로 방식을 기반으로 운영됐는데, 이 방식으론 기력 향상에 한계가 있었다. 몬테카를로 방식은 난수를 이용해 함수의 값을 확률적으로 계산하는 알고리즘을 말하는데, 원자폭탄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 등에 활용됐다.

조치훈 9단이 딥젠고와 대국하는 모습. 조 9단은 2승1패를 기록했다. [중앙포토]

조치훈 9단이 딥젠고와 대국하는 모습. 조 9단은 2승1패를 기록했다. [중앙포토]

‘알파고’ 다음으로 프로기사 수준의 기력을 갖춘 AI 바둑 프로그램으로는 ‘싱톈(형천·刑天)’과 ‘딥젠고(DeepZenGo)’가 있다. ‘싱톈’은 중국 텐센트 그룹이 지난해 3월부터 ‘알파고’ 타도를 목표로 개발 중인데 성장 속도가 어마어마하다. ‘알파고’와 동일한 딥러닝 기술을 적용했으며, 최근 들어 프로기사를 압도하는 수준까지 올라섰다. ‘싱톈’은 지난해 말부터 글로벌 바둑 사이트 한큐바둑에서 세계적인 프로기사들을 상대로 90%대 승률을 올리고 있다. 이제까지 ‘싱톈’을 상대로 승점을 올린 선수는 커제·박정환·구리·구쯔하오 9단 등 네 명뿐이다. 하지만 이들도 상대 전적에서는 ‘싱톈’에 크게 밀린다. 지난해 12월 30일부터 지난 2일까지 ‘싱톈’을 맞아 커제 9단이 2승6패, 박정환 9단은 1승4패를 기록했다.

일본의 AI 바둑 프로그램 ‘딥젠고’ 역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딥젠고’는 일본의 IT업체 드왕고가 2009년부터 개발한 AI 바둑 프로그램 ‘젠’의 상위 버전이다. 알파고의 등장에 충격을 받은 드왕고 측은 도쿄대 연구팀과의 협력을 통해 ‘젠’에 딥러닝 기술을 적용한 ‘딥젠고’를 만들기 시작했다. 딥러닝을 통해 기력이 급성장한 ‘딥젠고’는 지난해 11월 조치훈 9단을 상대로 호선으로 1승 2패를 기록했다. ‘딥젠고’는 지난달 29일부터는 한국 바둑 사이트 타이젬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240판의 대국을 펼쳐 218승 22패라는 놀라운 성적을 기록했다. ‘싱톈’과 비슷하게 90%를 웃도는 승률이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 장면. 이 9단은 1승4패를 기록했다. [중앙포토]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 장면. 이 9단은 1승4패를 기록했다. [중앙포토]

한국에도 AI 바둑 프로그램인 ‘돌바람’이 있다. 하지만 아직 다른 AI 바둑 프로그램과 비교해 실력이 크게 떨어진다. 현재 프로기사에게 두 점 정도 접어야 하는 수준이다. ‘돌바람’을 개발한 임재범씨는 “올해 상반기 안에 프로기사 수준을 따라잡는 것을 목표로 계속 개발하고 있다”며 “프로기사 정도의 수준이 되면 공식 대국을 열어 돌바람의 실력을 검증받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 페이스북의 ‘다크포레스트(darkforest)’, 프랑스 릴3대학 레미 쿨롱 교수가 개발한 ‘크레이지스톤(Crazystone)’ 등도 AI 바둑 프로그램 분야에서 경쟁을 펼치고 있다.

딥러닝 기술의 발전 속도를 감안하면 대다수 AI 바둑 프로그램이 인간을 넘어설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프로기사를 능가하는 AI 바둑 프로그램들의 상용화나 다른 분야로의 활용범위 확대도 빨라질 전망이다. 바둑계에서도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 서둘러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감동근 아주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몇 년 안으로 프로기사 수준의 AI 바둑 프로그램이 가정에 보급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프로기사들은 성적만 추구했던 기존 틀에서 벗어나 팬들과 적극적으로 호흡하고 다양한 스토리를 만들어 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는 “AI는 비단 바둑뿐 아니라 전 분야에 적용될 전망인 만큼 AI 시대의 바둑기사들은 인간적인 어필을 할 수 있는 뭔가를 찾아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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