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야” 88층서 비상계단 따라 뛰었다, 1층까지 33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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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층에서 화재 발생! 107층에서 화재 발생! 피난 계단으로 안전하게 대피하십시오!”

123층 롯데월드타워 소방훈련
본지 기자, 시민 2935명과 참가
계단 감압장치가 유독가스 차단
소방본부 “101층선 62분 걸려”

4일 오후 3시9분. 국내 최고층인 123층(555m)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88층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요란한 경고음과 긴급 방송이 나왔다. 지상 400m 정도의 높이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 이 마천루에서 2936명이 대피해야 한다. 이날 상황은 서울시의 사용승인을 앞둔 롯데월드타워에서 진행된 민관 합동 소방재난 대응 훈련이었다.

123층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4일 대규모 소방 훈련이 실시됐다. 107층에서 화재가 발생한 상황을 가정해 2936명의 시민이 비상용 엘리베이터와 계단을 이용해 건물 외부로 탈출했다. [사진 장진영 기자]

123층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4일 대규모 소방 훈련이 실시됐다. 107층에서 화재가 발생한 상황을 가정해 2936명의 시민이 비상용 엘리베이터와 계단을 이용해 건물 외부로 탈출했다. [사진 장진영 기자]

훈련에 참가한 취재기자는 88층에서 대피하는 역할이었다. 참가 시민들은 85~123층에 골고루 나뉘어 있다가 각 층에서 1층까지 실제로 대피했다. 긴급 방송이 나오자마자 88층 곳곳에 있던 시민 30여 명이 안전요원의 손짓에 따라 피난 계단으로 이동했다. 폭 1.5m가량인 계단실에 들어서니 이미 위층에서 내려온 시민들로 붐볐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롯데월드타워 지하에 있는 방재센터에서 훈련 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 장진영 기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롯데월드타워 지하에 있는 방재센터에서 훈련 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 장진영 기자]

계단실 곳곳에 설치된 감압장치 덕에 유독가스는 계단실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화재와 유독가스에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피난안전구역’이 있는 6개 층 아래(83층)까지 계단으로 이동하는 데 4분6초가 걸렸다. 47.7㎡(14.45평) 크기의 피난안전구역엔 이미 비상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민 200여 명이 있었다.

이곳에서 비상엘리베이터(2기·대당 23, 29인승)를 타면 아래층으로 내려갈 수 있다. 노약자와 어린이 등이 우선 사용하게 된다. 롯데월드타워엔 이런 피난안전구역이 102층과 83층 등 총 5개 층(엘리베이터 총 19기)에 설치돼 있다.

기자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이용했다. 50층에 다다르자 훈련 참가 시민들이 두꺼운 외투를 벗기 시작했다. 88층에서 출발한 지 16분52초 만에 40층에 도착했다. 40층에 이르니 시민들 이마에 땀이 흘러내렸고 계단 벽면에 ‘30’이란 숫자가 보일 땐 다리가 뻐근했다. 여기서부터 서울 남산(해발고도 265m)과 비슷한 230여m를 약 16분 만에 내려왔다. “힘들다” “괜히 계단으로 내려왔네” 같은 말이 계단실에서 들렸다.

88층에서 1층까지 걸어 내려오는 데 걸린 시간은 32분54초.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의 시뮬레이션에서 101층에서 1층까지 62분이 걸린다는 결과가 나왔다. 훈련 참가 시민인 최민석(33)씨는 “80여 개 층 계단을 계속 돌면서 내려와 약간 어지럽기도 했지만 크게 힘들진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훈련 상황이다. 이날 롯데월드타워 108층에서 훈련에 참가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훈련 결과를 토대로 부족한 점은 없는지 다시 한 번 철저히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글=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사진=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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