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당선자 '스웨터 해외순방'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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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 접견.

하비에르 솔라나 EU 외교정책 담당 대표와 회담.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회담.

해외 순방에 나선 에보 모랄레스(47) 볼리비아 대통령 당선자의 옷차림이 "너무 파격적"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13일 현재 브라질을 찾은 그는 새해 초부터 스페인.프랑스.남아공.중국 등 8개국을 순방 중이다.

모랄레스 당선자는 각국 정상을 만날 때마다 흰색.붉은색.파란색.녹색 등 여러 가지 줄무늬로 된 스웨터를 입었다. 다행히 신발은 운동화가 아닌 구두였다. 대통령 당선자가 다른 나라 정상을 만나는 자리에서 정장을 입지 않는 것은 외교 관례에 비춰볼 때 매우 드문 일이다.

모랄레스가 입은 스웨터는 알파카의 털로 만든 것이다. 알파카는 남미 안데스 산간 지대에서 자라는 낙타과의 일종. 볼리비아.페루의 주요 수출품이다.

알파카 털로 만든 의류는 모랄레스의 출신 계층인 인디오 사회에서 고급 제품으로 평가받는다. 모랄레스가 스웨터를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로이터 통신은 "지지 기반인 인디오(순혈 원주민)에게 자신이 인디오 출신이고 이를 잊지 않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스웨터를 입지 않을 때도 가죽 점퍼나 남방 셔츠를 걸쳐 정장 차림을 한사코 피했다. 5일 하비에르 솔라나 유럽연합(EU) 외교정책 담당 대표, 7일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선 남방 셔츠 위에 검은색 가죽 점퍼를 입었다.

타보 음베키 남아공 대통령과의 12일 회동에선 반소매 남방 셔츠 차림이었다. 이에 대해 현지 언론들은 "외교 관례와 의전에 어긋난다"며 못마땅한 시각을 드러냈다. 국왕이나 총리 등 국가 지도자를 만나면서 스웨터 하나 달랑 걸치는 것은 상대방 국가를 무시하는 태도라는 주장이다.

볼리비아에서도 이에 대해 찬반 양론이 거세다. 일간지 라 라손은 모랄레스가 한 가지 종류의 스웨터만 고집하는 것을 두고 "모랄레스에게 (선진국들이) 빚을 탕감해주는 것도 급하지만 당장 새 스웨터를 사줘야 한다"고 비꼬았다. 서방 선진국들이 국제통화기금(IMF)과 민간 금융기관들의 볼리비아에 대한 채권 삭감 방안을 논의하는 걸 빗대서다.

그는 22일 대통령 취임식 때도 양복을 입지 않은 노타이 차림으로 나오겠다고 공언해 놓았다. 해외 순방에서 보여줬던 모습을 고려하면 또다시 알파카 스웨터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볼리비아의 한 패션 디자이너는 "모랄레스가 정장을 하지 않기로 한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면서 "하지만 좀 더 격식을 갖춰 입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충고했다.

모랄레스의 '파격'행진은 옷차림에 그치지 않는다. 남미 최초의 인디오 출신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정식 취임식과 별도로 인디오 전통 의식에 따른 취임 행사를 할 계획이다.

선거 공약을 지키기 위해 대통령 월급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폭탄선언'도 했다. 공직자들의 월급을 깎아 빈민들을 위한 일자리를 더 만들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그 바람에 새 정부의 각료와 의원들의 월급이 절반으로 깎일 전망이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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