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균동式 음악퍼포먼스 엽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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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5~16일 밤 경기도 남양주 서울종합촬영소 내 영화 '공동경비구역JSA'의 세트장에서는 특별한 공연이 열린다. 영상과 기괴한 음악이 뒤섞인, 새로운 형태의 퍼포먼스 '프리뮤직 인 비무장지대(DMZ)'가 바로 그것. 남양주 세계야외공연축제 중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이 공연의 주인공은 여균동(45.(右)) 감독과 그의 여동생 여계숙(39)씨다. 呂감독이 영상을, 계숙씨가 음악을 맡아 함께 무대에 서는 것.

영화 '세상 밖으로''맨?' 등으로 관객에게 친숙한 呂감독에 비해 계숙씨의 이름은 아직 낯설다. 그도 그럴 것이 계숙씨는 10여년 넘게 독일에서 살았다. 이름조차 생소한 '프리 뮤직'을 하면서.

"프리 뮤직은 직관에 의해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음악이에요. 독일이나 유럽에서는 매니어층이 두터운 반면 아직 한국에선 개념조차 생소할 거예요. 그 첫 무대에 선다는 것, 정말 신나면서도 떨립니다."

연극.영화를 한다며 집 밖에서 살던 오빠의 끼를 닮아서였을까. 서울대 성악과를 졸업한 뒤 1990년 독일로 건너가 예비 오페라 가수의 길을 걷던 계숙씨는 갑자기 옆 길로 빠졌다.

오페라 무대에 서는 것이 너무 갑갑했던 그에게 한 음악 페스티벌에서 접한 '프리 뮤직'은 해방구였다. 그는 금세 프리 뮤직에 빠져들었고 지금은 그 분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특히 한지에 먹을 써서 자신의 영감을 음표로 그린 '소리 그림'은 다른 뮤지션들이 따라할 정도다.

불혹(不惑)을 바라보는 동생이지만 呂감독에겐 아직도 어린시절 꼬맹이처럼 비춰지는 걸까. 呂감독은 자신의 영화 '비단구두' 촬영을 목전에 두고도 동생 일에 매달렸다. 장소를 물색하고, 팸플릿을 만들고, 내친 김에 동생의 '소리 그림' 60여점을 서호갤러리에 전시하는 기획전도 마련했다.

"생각해보면 제가 아버지 역할을 대신한 것 같아요. 어릴 때 돌봐주고, 대학입학 시험 보는 날도 데려다주고, 독일로 유학갈 때도 함께 가고…. 오빠가 참 많이 예뻐했다, 그치?"

呂감독이 동생에게 씨익 웃어보이자 계숙씨가 한마디를 던진다.

"한살 때인가 오빠가 공 차러 간다고 저를 쌀 뒤주 위에 올려놓고 나갔대요. 그때 떨어져서 머리에 난 혹이 아직도 있어."

동생이 오페라 가수가 되길 바랐던 呂감독은 계숙씨의 '업종 전환'에 꽤 실망했다고 한다. 그러나 呂감독이 '가족 대표'로 독일로 날아가 음악을 접하면서 실망은 기대로 바뀌었다. 呂감독의 말대로라면 "들으면 들을수록 끌리는 음악"이라는 것이다.

"이 기찻길 기억나니. 여기가 우리 고향이잖아. 난 서부역 근처의 마구간에서 태어났고, 넌 옛 프랑스문화원 뒤 한옥집에서 태어났잖아."(여균동 감독)

"에이, 마구간이 뭐야. 집이면 집이지."(여계숙씨)

"그 때만 해도 서부역 근처엔 말을 키우는 집들이 있었어. 동방박사만 안왔을 뿐이지 이 오빠도 예수님처럼 마구간 출신이야."(여균동 감독)

아웅다웅하는 남매는 다정했다. 서대문 기찻길 옆에서 사진 촬영을 할 때조차 둘은 끊임없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오빠는 동생이 한국에서도 자신의 음악을 잘 뿌리내리길 바랐다. 동생은 오빠가 유명세에 대한 부담을 훌훌 벗고 더 좋은 영화를 만들거라 확신했다.

글=박지영,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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