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마이클, 데이비드 보위, 프린스…그 휑한 빈 자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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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크리스마스 직후 또 하나의 부고가 웹과 소셜 미디어를 뜨겁게 달구었다. 아직 떠나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의 조지 마이클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여러 면에서 해도 너무한 2016년이 마지막까지 큰 허무함과 아쉬움을 안겨준 것이다.

데이비드 보위

데이비드 보위

올 한 해 동안 데이비드 보위를 시작으로 이글스의 글렌 프레이,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모리스 화이트,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의 키스 에머슨과 그렉 레이크, 프린스, 레너드 코헨 등 전설적인 거장 뮤지션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 마치 오래 된 지인이 먼저 가기라도 한 것처럼, 많은 이들이 쓸쓸하고 허탈한 마음을 숨기지 않은 채 그들을 위해 술잔을 기울였다. 나와 무관한 유명 팝 스타의 죽음이 대관절 어떤 의미를 지니기에? 그들의 존재는 대체로 추억과 결부되어 있고 추억이란 나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다. 이들의 부재는 흡사 내 감성 깊은 곳에 소중히 간직되어온 꿈의 상실과도 같다. 생생한 기억 속에서 영원한 젊음을 유지할 것만 같았던 아티스트들이 어느덧 나이가 들고 사라진다. 문득 그 세월의 무게가 내 가슴과 어깨에 고스란히 내려앉아 있음을 실감한다. 그들을 향한 건배는 갑작스레 소환되어 깨어난 내 추억을 향한 손짓이다.

조지 마이클

조지 마이클

조지 마이클의 사망 소식은 자연스럽게 기억의 시계를 그를 처음 접했던 때, 그의 번뜩이는 재능이 더없이 환한 빛을 발하던 시절로 되돌린다. 40대 안팎의 세대에게 왬과 조지 마이클이라는 이름은 각별하다. 라디오와 TV에서, 거리에서, 카페에서 들려오던 그의 섹시하고 매끈한 음색은 트렌드의 중심에 자리했고, 그의 이름은 포스트 디스코 시대의 슈퍼스타들 즉 마이클 잭슨과 프린스, 마돈나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흥겹고 역동적인 리듬을 담은 ‘클럽 트로피카나(Club Tropicana)’, ‘웨이크 미 업 비포 유 고고(Wake Me Up Before You Go-Go)’와 ‘프리덤(Freedom)’, ‘아임 유어 맨(I’m Your Man)’, 애절하고 수려한 선율의 ‘케어리스 위스퍼(Careless Whisper)’와 ‘웨어 디드 유어 하트 고(Where Did Your Heart Go?)’, ‘하트비트(Heartbeat)’, 그리고 어떤 캐럴보다도 사랑 받았던 명곡 ‘라스트 크리스마스(Last Christmas)’ 등 왬 시절의 비범한 매력은 천재적 역량을 확연히 드러낸 1987년의 솔로 데뷔작 ‘페이스(Faith)’에서 거부할 수 없는 매혹으로 진화했다. 팝과 댄스, 펑크(funk)와 R&B와 소울, 신스팝(synthpop)과 록의 색채를 조화롭고 세련되게 드러낸 채, 팝 음악이란 이런 것이라며 잔뜩 뽐내고 있었다.

거장 뮤지션이 많이 떠난 한 해
동시대를 공유하는 80년대 음악
풍요로웠던 우리의 추억도 저물어

그가 불러낸 1980년대는, 돌이켜 보면 참 풍요로운 시절이었다. 화려한 영웅들의 시대에 음악이라는 거대한 즐거움을 한껏 누려봤던 이들에게 80년대는 아련한 추억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실상 대중음악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고 활짝 꽃을 피웠던 60~70년대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음악이 빈곤했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유독 80년대에 대한 향수가 가슴 한 편에서 강하게 꿈틀대는 까닭은 무얼까? 그때 음악의 힘은 강력했다. 음악의 가치는 보다 진지했고 무엇보다 동시대를 공유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개인의 음악 취향과 관계 없이, 심지어 음악 자체에 무관심했던 이들에게도 80년대의 팝 스타는 낯선 이름이 아니었다. 수많은 학교 앞에서, 버스 정류소에서, 상가에서 어김없이 우리를 유혹하던 레코드 숍은 또 어떠한가. 시대의 향기는 아무런 거부감 없이 내 몸을 감싸고 내 감성을 파고들었다. ‘풍요로움’은 온전히 내 것이었다.

프린스

프린스

7년 전 마이클 잭슨의 죽음이 남긴 깊은 상실감은 특별했던 시절의 거목이 떠났다는 데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올해의 숱한 이별 중 거대한 존재감을 지녔던 데이비드 보위와 레너드 코헨 등의 부고가 숙연한 슬픔을 남겼다면, 공교롭게도 잭슨처럼 50대의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80년대의 또 다른 영웅들 프린스와 조지 마이클의 죽음은 유달리 망연한 마음을 들게 했다. 세상 어떤 것보다 음악이 가장 소중하게 느껴지던 때, 팍팍한 일상에서 펼쳐지는 ‘다른 세계로 떠나는 여행’이라는 비현실적 상황이 매일같이 환상처럼 펼쳐지던 시절에 대한 강한 그리움 탓이리라. 일찍 떠나버린 그 시절의 영웅 조지 마이클의 명복을 빈다.

김경진 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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