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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정부, 힘 빠진 정책…“성장률 2% 유지 버거울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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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내년 한국경제엔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 올해 활황세를 보인 주택시장도 불안하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에서 바라본 강남 일대. [중앙포토]

내년 한국경제엔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 올해 활황세를 보인 주택시장도 불안하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에서 바라본 강남 일대. [중앙포토]

‘처방전 부족한 힘 빠진 정책’

경제성장률 전망치 3 → 2.6%로
외환위기 직후인 99년 후 첫 2%대
공공자금 20조원 이상 추가 집행
“성장대책 담겼지만 소극적” 지적
추경예산 조기 편성 등 논의될 듯

정부 합동으로 29일 발표한 2017년 경제정책방향(경방)은 예년의 그것과 달랐다. 정부가 매년 말 다음해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는 건 국민에게 정책의 큰 틀을 설명하고 민생 안정과 경제 발전을 추진하기 위해서다. 때문에 경방에는 새로운 정책과 제도 개선 등을 통한 희망과 의욕이 담겨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날 발표된 내년 경방은 적극적인 도전 정신보다는 소극적이고 관리적인 내용으로 일관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로 인한 조기 정권교체 가능성이라는 현실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년 경제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도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애초 3%로 하려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로 낮춘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정부가 새해 성장률 전망치로 2%대를 제시한 건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이후 처음이다. 마지노선이 무너진 셈이다.

정부의 성장률 전망치는 사실 목표치에 더 가깝다. 다른 연구기관들과 달리 정부의 ‘전망치 부풀리기’에 대한 시선이 비교적 관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정부조차 성장률 전망치를 2%대로 내린 상황이다. 바꿔 말하면 실질적으로는 2.6% 달성도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2.6% 달성도) 쉽지 않다. 더 나아가 2%를 유지하기도 힘들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전망한 세부 지표들도 대부분 암울하다. 경제성장률에 GDP디플레이터(물가지수)를 더해 산출하는 경상성장률은 올해 4%에서 내년에 3.8%로 더 떨어질 것으로 예측됐다.

올해 2.4%로 예상되는 민간소비 증가율은 내년 전망치가 2%로 더 낮아졌다. 취업자 수 증가 규모도 올해 29만 명에서 내년 26만 명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게 정부 관측이다. 특히 그동안 한국 경제를 홀로 지탱해왔던 건설투자조차 증가율이 올해 10.8%에서 내년에는 4%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문제는 정부가 악성 질환을 진단하고도 적극적인 ‘처방전’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이번 경방에도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대책들이 적지 않게 포함돼 있다. 정부는 20조원 이상의 공공자금을 추가로 풀어 ‘응급처방’에 나서기로 했고, 민관을 총망라한 고용 창출 대책도 마련했다. 대대적인 4차 산업 육성책과 혼인비용세액공제로 대표되는 비혼·저출산 대책 등 중장기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방안들도 담았다.

하지만 꺼져가는 경제를 지탱할 비상대책이라고 하기 힘들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원장은 “비상시국이라 하더라도 정부는 경제만큼은 확실하게 책임진다는 의지를 밝혀야 한다”며 “이번 경방에서는 그런 의지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가 박 대통령에 대해 탄핵 인용 결정을 하면 이번 경방은 생명력을 잃을 공산이 크다.

이후 선거를 거쳐 새 정부가 들어서면 새로운 철학이 반영된 경제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다. 짧으면 반년 짜리 시한부 정책을 만들면서 적극적인 내용들을 담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도 이해가 간다.

물론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런 해석을 부인했다. 그는 이날 경방을 발표하면서 “기본적인 경제정책을 세우는 건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몇 달 짜리 (시한부 정책이라는) 가정 하에 만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재부가 정치 상황 때문에 경방에 많은 내용을 담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새로운 정책을 내놓기보다 경제가 더 큰 위기로 번지는 것을 방지하는 수준 정도로 정책을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 “여당의 주장대로 2월에 추가경정예산을 조기 편성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추경 예산 편성 시점에 대한 논의와는 별도로 재정 투입을 추가로 확대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장기 불황 국면이 되면서 전통적 재정·통화정책이 먹혀들지 않고 있다”며 “정부가 장기적이고 큰 틀의 한국경제 연착륙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세종=박진석·이승호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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