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19만 소국, 대만과 단교 선언…양안 외교전 불 붙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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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대만의 외교전쟁이 시작됐다. 한동안 잠잠하던 양안(兩岸) 외교전쟁에 다시 불을 붙인 나라는 ‘상투메 프린시페’란 이름의 아프리카 국가다. 상투메는 수교 19년만에 대만과 외교관계를 단절한다고 20일(현지시각) 발표했다. 대만과의 단교는 조만간 중국과 국교를 맺을 것임을 의미한다. 이름조차 생소한 인구 19만명의 작은 나라가 대만을 버리고 중국을 선택함으로써 대만의 수교국은 21개국으로 줄어들었다. 이로써 대만 수교국을 포섭해 자국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중국의 대만 고사(枯死)작전과 국제적 고립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대만의 치열한 공방전이 재연될 조짐이다.

대만은 충격에 빠졌다. 21일 침통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에 나선 리다웨이(李大維) 대만 외교부장은 “국가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상투메와 단교하고 현지 대사관과 직원들은 즉시 철수시켰고 모든 양자 협력 사업을 중지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우리는 외교의 원칙에 충실할 뿐이며 ‘머니게임’을 원치 않는다”는 말도 했다. “상투메가 단교 통보 직전 천문학적 숫자의 금전 원조를 요구해 왔다”며 "이를 거절한 것이 단교의 직접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대만 일간지 중국시보는 상투메의 요구액이 2억1000만 달러(약 2500억원)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친 대만’ 도발적 행보에
중국, 양안 외교전쟁 카드로 맞불
대만 “2500억 원조 거절하니 단교”
수교국 21개로 줄어 반격 고심

중국은 희색이 역력했다. 중국 외교부는 기다렸다는 듯 화춘잉(華春瑩) 대변인 명의로 문답 형식의 논평을 내고 “상투메 정부가 ‘하나의 중국’ 원칙이란 올바른 궤도로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주요 외신 기자들의 휴대폰으로 논평 전문을 전송하는 이례적인 모습도 보였다. 안펑산(安峰山) 대만판공실 대변인도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하고 대만 독립을 반대하는 입장은 확고부동하다. 국제사회의 광범한 인정과 지지를 받을 것”이란 성명을 냈다.

상투메의 단교 결정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친(親)대만, 반(反)중국 행보와 맞물려 국제사회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또 다음달 7일부터로 예정된 니카라과 등 중남미 수교국 4개국 방문 때 미국을 경유할 예정인데 중국은 미국 경유를 승인하지 말 것을 미국에 요구하고 있다. 차이 총통이 중국의 압박에도 ‘92공식’(‘하나의 중국’이 원칙이지만 해석은 각자 알아서 한다는 중국과 대만의 1992년 합의)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하나의 중국’ 원칙을 협상 카드로 삼을 수 있음을 시사하는 트럼프 당선인의 발언까지 나오자 중국이 ‘외교전쟁 카드’를 꺼내 든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수교국은 69년 각각 44개, 67개 국으로 대만이 중국을 앞섰으나 71년 대만이 유엔에서 퇴출되면서 66대 54로 역전됐다. 중국의 절대 우세로 진행되던 양안 외교전쟁은 친중(親中)정책을 표방한 국민당 마잉주(馬英九) 정권이 출범하면서 잠잠해졌다. 하지만 지난해 5월 대만 독립 지향이 강한 민진당 차이 정권이 출범한 이래 중국이 외교전쟁을 다시 일으킬 것이란 관측이 제기돼 왔다. 지난 8월에는 중국과 바티칸 교황청의 수교 임박설이 전해지면서 대만에 비상이 걸렸다. 가톨릭 교인인 천젠런(陳建仁) 대만 부총통은 지난 9월 바티칸의 테레사 수녀 성인 추대식에 참석해 수습에 나서기도 했다. 대만 수교국 중 파나마·파라과이 등 10개국이 가톨릭 국가여서 바티칸이 중국과 수교하면 대만 고립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편 티베트 망명 정부 지도자 달라이라마를 초청한 여파로 중국의 전방위 보복 조치에 시달리던 몽골은 중국의 압박에 무릎을 꿇었다. 첸드 뭉흐어르길 몽골 외교부장은 20일 “달라이 라마는 정부가 초대한 것이 아니며, 앞으로도 초청하지 않을 것”이라며 “종교 채널을 통해서도 현 정부는 달라이라마의 몽골 입국을 재허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첸드 부장은 “몽골은 중·몽 관계 정상화를 위한 대화에 노력 중이며 티베트는 중국과 불가분의 일부임을 일관되게 지지한다”고 인정했다.

베이징=예영준·신경진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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