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도와준 쇼트트랙 이정수의 부활

중앙일보

입력

 

'올림픽' 이 단어를 말할 때 이정수(27·고양시청)는 목에 메었다. '흠, 흠' 목을 가다듬고 나서야 말을 이어갈 수 있을 정도로 이정수에게 올림픽은 큰 의미였다. 이정수는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2관왕(1000m·1500m)에 올랐다. 2006년 토리노 대회에서 3관왕을 차지한 '쇼트트랙 황제' 안현수(31·러시아명 빅토르 안)의 뒤를 이은 차세대 황태자로 주목 받았다. 하지만 이정수의 인생은 그 때부터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런 이정수가 지난 17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6~17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 4차 대회 남자 1500m 결승에서 2분14초317 기록으로 우승했다. 지난 10일 상하이에서 열린 월드컵 3차 대회에 이어 2개 대회 연속 15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부활을 알렸다. 이정수가 월드컵 대회에서 1500m 금메달을 딴 건 지난 2012년 2월 모스크바 대회 이후 4년10개월 만이다.

이정수는 "밴쿠버 대회 이후 6년 동안 참 우여곡절이 많았다.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하려고 할 때마다 계속 안 좋은 일이 터졌다"며 씁쓸해했다.

이정수는 지난 2010년 5월 곽윤기(27)와 대표 선발전 경기에서 서로 도와주기로 했다는, 일명 '짬짜미 논란'에 휘말려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부터 6개월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다. 2011년 1월 징계를 해제 됐지만 허리와 발목 부상으로 스케이트를 탈 수 없었다. 스케이팅 감각은 떨어졌고 2013년 4월 열린 소치 올림픽 대표팀 선발전에서 결국 탈락했다. 그는 "그 때 두 번째 올림픽이 더욱 간절해졌다. 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했다.

그래서 이정수는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하기로 결정했다. 지구력이 좋은 이정수라면 충분히 롱트랙 경기인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서도 성공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2013년 10월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도 탈락했다. 소치행 비행기를 탈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스피드스케이팅을 만만하게 봤다는 비난도 들어야 했다.

2018년 평창 올림픽에서 이정수의 나이는 만 29세. 세대교체를 하고 있는 한국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에서 그의 입지는 점점 좁아졌다. 열 두살 때부터 시작된 그의 빙판 인생이 아쉽게 막을 내리는 듯 했다.

이정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힘들 때마다 '올림픽' 단어만 생각했다. 반드시 올림픽에 나가겠다고 마음 먹었다." 이정수는 '평창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삼고, 스케이트 인생 15년 동안 굳어진 자신의 단점을 고쳐나가는 데 초점을 맞췄다. 장거리에 강한 이정수의 장점은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한 안정적인 레이스 운영이다. 하지만 안현수처럼 후반에 치고 나가는 폭발력은 부족했다.

그런데 17일 1500m 결승에선 안현수에 버금가는 추월 능력을 보여줬다. 줄곧 5위권을 유지하던 이정수는 2바퀴를 남기고 3~4위권으로 올라섰다. 치열한 몸싸움이 벌어진 마지막 바퀴에서 선두에 있던 싱키 크네흐트(27·네덜란드)를 치고 나가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크네흐트는 이번 시즌 남자 1500m 세계랭킹 1위다. 크네흐트는 "내 뒤에서 이정수가 따라오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추월 시도를 보이지 않아서 의아했다.

그런데 막판에 나를 순식간에 따라잡더라. 기다리고 있다가 한 번의 기회를 잡아채는 맹수 같았다"고 놀라워했다. 이정수의 소속팀 모지수 고양시청 감독은 "지난 6년 동안의 슬럼프가 이정수를 성숙하게 만들었다. 레이스를 읽는 시야가 넓어졌다. 예전에는 무조건 빠르게만 타는 등 레이스 운영이 단조로웠지만 이제는 치고 빠지고를 자유자재로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이정수는 이번 대회 전 모 감독에게 이렇게 말했다. "감독님, 저는 평창 올림픽에 무조건 나가야 합니다. 거기서 반드시 메달을 따야합니다. 저는 꼭 해야합니다." 그 모습이 마치 거사를 치르러 나가는 독립운동가 같아서 모 감독은 어깨를 두들겨 줬다고 한다. 이정수가 비장해진 이유는 일찍 하늘에 간 소중한 사람들 때문이었다.

이정수는 친했던 쇼트트랙 동료 노진규와 오세종을 먼저 하늘로 보냈다. 24세 꽃다운 나이였던 노진규는 지난 4월 골육종 투병 끝에 눈을 감았고, 오세종은 지난 6월 34세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정수는 특히 오세종과 각별했다. 토리노 대회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인 오세종은 장비관리사로 변신해 밴쿠버 올림픽에서 이정수의 스케이트 날을 갈아줬다. 거기다 이정수를 열렬히 응원했던 박예슬양(당시 단원고 2학년)이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때 희생됐다.

이정수는 "어려운 시기에 소중한 사람들까지 잃어 심적으로 힘들었다. 하늘에 있는 세종 형, 진규, 예슬이가 나를 도와주고 있는 것 같다"며 "이제 내가 할 일은 이제 딱 하나다. 평창 올림픽 때 이곳(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메달을 목에 거는 것"이라며 들고 있던 스케이트를 꽉 움켜쥐었다.

강릉=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