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녀 말 듣기 싫어 숨기고 일 찾는 것도 재혼도 어려워…사이좋은 부부 보면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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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국내에선 황혼이혼 여성에 대한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6월 ‘노인복지연구’에 게재된 ‘황혼이혼 여성 노인 사례 연구’가 눈에 띌 뿐이다. 이현심 서울벤처대학원대학 교수가 이혼여성 K씨(70)를 심층 인터뷰했다.

황혼이혼 70대 여성의 삶은

K씨는 7년 전 40년간의 결혼 생활을 정리했다. 남편(72)은 신혼 때 시댁으로 퇴근하고 모든 일을 시어머니와 논의했다. 결혼 전 애인을 만나고 장모의 장례식엔 당일만 참석했다. 아내 동의 없이 친구·시댁의 빚 보증을 섰다. 항의하는 K씨에게 폭력을 휘둘러 경찰이 네 차례 찾아왔고 세 차례 경찰서로 연행됐다. K씨는 “50대 내 인생은 정말 지옥 같았다”고 표현했다. 이혼 전에는 불면증· 우울증 등에 시달렸는데, 가정법원을 나선 날 슬프지도 않았고 홀가분했다. 그날 밤 오랜만에 숙면을 취했다.

이런 기쁨도 잠시. K씨는 “이혼녀라는 말을 듣기 싫어 이혼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교회 사람들이 남편 안부를 물으면 말을 돌렸다”고 말한다. 노심초사하다 결국 교회를 옮겼다. 그는 “나이가 70이니까 아무것도 못해. 일을 하겠어, 시집을 가겠어? 이렇게 살다 가는 거지. 애들한테 상처 준 것 같아 많이 미안하고. 이혼도 젊어서 해야지 나이 들어 하니 아무것도 못해 ”라고 한탄했다. K씨는 “이제는 많이 외로워. 사이좋은 부부가 TV에 나오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와. 시간이 갈수록 외로움이 더 밀려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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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는 “여성의 이혼 신청이 느는 것은 인권과 평등 의식이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이라며 “그래도 이혼 사실을 드러내지 못하는 건 편견이 남아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자체가 황혼이혼 예방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이혼 당사자의 심리상담, 우울증 검사, 자존심 향상 프로그램 등을 개발하며 ▶이혼 여성 자조(自助) 모임을 설립·지원할 것을 제안했다.

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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