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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보폭은 때론 좁고 때론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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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런던특파원

고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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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벌리어(cavalier)’란 군내 나는 단어가 있다. 소문자로 시작하면 무신경하다는 뜻인데, 대문자면 찰스 1세를 지지해 의회에 맞선 왕당파를 가리킨다.

 이 단어가 7일 영국 대법원에 등장했다.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를 규정한 리스본조약 50조 발동이 정부 결정(왕의 특권)만으로 가능한지, 의회 의결이 있어야 하는지 심리 과정에서다. 북아일랜드 측 변호인은 1998년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에서 영국 정부가 주권의 일부를 EU에 양도한, 북아일랜드만의 헌법적 상황이 있는데 정부가 북아일랜드인들의 동의 없이 그걸 허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건 무신경하거나 왕당파적(반의회란 의미) 접근이라고 했다.

 스코틀랜드 측은 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스코틀랜드 자체 법 체계를 유지토록 허용한 양국의 합병 의결 때다. 스코틀랜드 측 변호인은 정부가 스코틀랜드 법까지 개정할 순 없다고 했다.

 6월 23일 브렉시트로 결론이 났을 때만 해도 영국이 당장 EU를 떠나나 싶었다. 결절점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제껏 EU와의 관계 설정 논란은 물론 수백 년에 걸친 연합왕국 정체에 대한 헌법적 논쟁까지 벌이고 있다.

 민주주의 역사가 오랜 나라이니 낯익은 모습이겠지 싶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대법원이 기능한 게 2009년부터였다. ‘법에 의한 지배’란 전통은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사법부 독립’은 비교적 생소하다. 민주주의가 완결된 상태가 아닌, 어떤 이상(理想)을 향해 가는 여정 때론 분투란 걸 보여준다.

 영국사에서 이런 예는 적지 않다. 민주정의 원형(原型) 문서로 추앙받는 1215년 마그나 카르타는 체결되자마자 즉각 버려졌고 아들 왕 때 가서야 수용됐다. 진정 빛을 발한 건 미국에서다. 1688년 명예혁명이 무혈이란 건 잉글랜드 중심적 사고일 뿐이다. 스코틀랜드는 진압됐고, 아일랜드는 말 그대로 피바다를 이뤘다. 이런저런 곡절 끝에야 왕권이 아닌 의회를 통한 국민의 의사가 기반인 국가로 나아갔다.

 9일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중요한 결정이 내려진다. 분기점이다. 진정한 변화는 그 이후 만들어질 게다. 지난하고도 고통스러울 게다. “바꾸자”는 건 한목소리이겠으나 ‘어떻게’가 앞에 붙으면 갈라질 수밖에 없어서다. 시끄러운 게 정상이다. 진보란 멀리서 봐야 직선이지 가까이에선 갈지자거나 때론 뒷걸음질일 수 있다. 균일한 보폭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하다. 긴 호흡으로 민주주의를 위한 거친 여정을 계속하자.

고정애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