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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줄광대 40년’ 김대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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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박정호 논설위원

박정호 논설위원

“정운아, 그나저나 대학시험에서 떨어졌다며?” 스승이 물었다. 제자가 부끄러운 듯 짧게 답했다. “예.” 스승이 말을 이었다. “떨어졌다고 괘념치 말아라. 선생님은 수없이 떨어졌다. 그래, 떨어지기를 잘했다. 앞으로 선생님과 1년 동안 도제학습을 받을 텐데, 이 얼마나 좋은 일이냐.” 스승의 격려에 제자는 3m 높이의 줄 위에서 몸을 놀렸다. 부채 하나로 균형을 잡으며 앞으로 걷고, 뒤로 돌고, 하늘로 뛰어올랐다.

지난 2일 밤 경기도 과천시 과천시민회관 대극장. 줄타기 김대균(49) 명인의 입문 40주년 공연 ‘천 년의 꿈, 줄광대의 화려한 비상’이 열렸다. 외줄 하나에 몸을 맡기고 40년을 달려온 김 명인의 노고를 축하하는 자리였다. 2000년 최연소 나이로 국가무형문화재 제58호 줄타기 보유자로 지정되고, 201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도 등재된 그의 빼어난 솜씨를 만끽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기대는 기대에 그쳤다. 이날 김 명인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린 제자 다섯 명의 공연을 돕는 어릿광대 역할을 했다. 제자들이 줄에 오를 때마다 “네 꿈이 무엇이냐” “줄 위에 서니 무엇이 보이느냐”라며 일일이 물었다. 전수생들의 기량은 아직 여물지 않았다. 줄에서 떨어질까, 아슬아슬한 대목도 있었다. 그럼에도 자신감은 넘쳤다. “스승님처럼 천하를 호령하는 줄광대가 되고 싶다”고 다졌다.

석 달여 전 김 명인과 제자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은 과천 관악산 아랫녘 줄타기 학습장에서 여름캠프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때 구슬땀을 흘렸던 학생들이 이날 무대의 주인공이 됐다. 짧은 기간이나마 실력이 크게 늘었다는 걸 한눈에도 알 수 있었다. 스승은 당부도 잊지 않았다. “나는 쌀밥을 먹으려고 줄을 탔다. 하지만 너희는 다르다. 앞으로 40년이 더 중요하다. 마음껏 비상해 보아라. 어여차~.”

줄타기는 13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조선시대 인기 최고의 놀이였다. 조금이라도 욕심을 부리면 떨어지기 십상인 위험한 종목이기도 하다. 김 명인의 재주를 못 본 게 아쉬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저야 계속 탈 텐데요, 뭐. 아이들이 무럭무럭 성장해 더 큰 세상을 누렸으면 합니다. 시국 때문에 공연을 취소할까 했는데 다시 마음을 돌렸어요. 예나 지금이나 소시민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게 광대의 몫이니까요.” 줄광대보다 더 위태로운 줄을 타고 있는 요즘 우리다. 40년, 아닌 내년 만이라도 준비하는 ‘정치광대’는 진정 없는 걸까.

박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