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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비극적 의경 청소 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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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상언 사회2부 부데스크

이상언
사회2부 부데스크

치열한 의경 선발 경쟁을 뚫은 건강한 장정들이다. 떨어진 친구들의 부러움도 제법 샀다. ‘탁월한 코너링’ 실력을 북악스카이웨이 시범 드라이빙에서 깔끔하게 선보일 능력 또는 기회가 없었거나 그저 특출나게 운이 좋지는 않았다. 집회·시위·경비를 맡는 기동단에 배치됐고, 더우나, 추우나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를 지켰다. 서울경찰청장 부속실에서 근무한 우 전 수경이 누린 1년에 외박 59일, 외출 85일의 전설 같은 일은 바라지도 않았다. 악명 높았던 구타 문화가 사라졌다는 점에 만족하며 지내 왔다. 이 사건의 주인공들이다.

 시위대가 몰려와 당사에 달걀을 던져댔다. 그러니 원인은 대통령 또는 새누리당 정치인들이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꼭 뭔가를 던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므로 시위대 책임일 수도 있다. 기동단장은 청소에 대해 “늘 해왔던 일”이라고 언론에 말했다. 경찰청장은 “자발적인 것으로 보고받았다”고 했다. 결단코 억지로 시킨 경찰 간부는 없고 늘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 원해서 한 것이었다는 주장이다. ‘선의’에 의한 일이었다는 게 이 조직의 결론이다. 해명에도 유행이 있나 보다. 결국 의경들의 위생적 생활태도 또는 투철한 봉사정신이 청소의 원인이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믿지를 않는다. 경찰 간부가 시켰다고 생각한다. 사실이라면 직권남용이다. ‘공무원이 권한을 이용해 다른 사람에게 의무에 없는 일을 하게 한다’는 이 범죄의 개념은 이제 국민 상식이 됐다. 그게 아니라 진짜 자발적 봉사였다면 국가공무원인 의경이 근무시간에 정해진 일이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일을 무단으로 한 것이 된다. 이는 곧 직무태만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늘 해왔던 일’이라면 문제가 더 커진다. 경찰청장이 감찰을 지시해 진상을 규명하면 간부들의 직권남용인지, 의경들의 직무태만인지 금세 드러난다.

 나라에 큰 화가 생기면 제일 먼저, 가장 많이 삶이 힘들어지는 이는 주변부 사람들이다. 장사가 안 되고 일자리가 줄어든다. 경찰 중에서는 몸으로 때우는 의경들이 제일 고단해진다. 그걸 아는 시민들은 촛불집회에서 그들을 안아 격려해 줬다. 꽃을 던지기도 했다. 그런데 시민이 던진 달걀을 새누리당 정치인이나 당직자가 아니라 시민의 아들이 치웠다. 이러려고 자식을 군대에 보냈나 하는 자괴감이 들 만하다. 이런 시민의 울분을 이해 못하고 “이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난리냐”고 되묻는 경찰 간부들, 당신들도 탄핵감이다. 자괴감도 당신들 몫이다.

이상언 사회2부 부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