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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코리아 디스카운트 뒤바꾼 평화집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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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논설위원

남정호
논설위원

요즘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을 보는 해외 언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강남 아줌마에게 놀아난 것도 충격적이지만 이 못지않게 180도 달라진 시위문화 때문이다.

그간 해외에서는 뿌연 최루탄 연기 속에서 화염병을 던지는 살벌한 시위대가 한국을 상징하는 이미지였다. 어쩌다 한국 뉴스가 나오면 노상 폭력시위 장면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2만 명에서 시작, 200만 명으로 늘어난 촛불시위가 여섯 번이나 계속됐는데도 별다른 충돌 하나 없었다. 걸핏하면 화염병에 쇠파이프를 휘두르던 한국인들이 돌연 양처럼 순해진 것이다.

경탄한 해외 언론들은 다투어 급변한 시위문화를 타전했다. 뉴욕타임스는 “한국 시위가 축제처럼 변했다”고 썼다. AP통신은 ‘놀라운 변신, 평화가 한국 시위의 특징이 되다’라는 제목으로 아예 원인 진단에 나섰다. AP가 꼽은 이유는 셋. 우선 SNS 가 자발적 평화시위에 큰 힘이 됐다. 시위 참가자들은 페이스북 등을 통해 ‘촛불시위에서 절대 폭력이 사용돼선 안 된다’고 서로 다짐해 이를 실현시켰다는 분석이다. 둘째, 유연한 공권력도 큰 도움이 됐다. 특히 법원은 청와대 100m 앞까지 접근을 허용하는 등 전에 없이 유연한 모습을 보였다. 셋째, 격렬한 투쟁 대신 압도적 숫자로 세를 과시하겠다는 주최 측 판단도 결정적 요인으로 꼽혔다.

어쨌거나 정확한 진단은 사후 전문가의 몫이지만 평화집회가 정착되면 생각 못한 경제적 순기능이 작동하게 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게 있다.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인상으로 우리 제품이 제 가치를 인정 못 받는 현상이다. 이유는 여럿이나 핵심 요인으로 꼽혔던 게 북핵 위협, 후진 정치, 그리고 폭력시위였다. “화염병이 난무하는 정치 후진국이 제대로 물건을 만들겠느냐”는 불신이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인한 손해는 심할 경우 정상가의 30%에 달한다는 연구도 있다. 한국산이라고 1만원짜리 물건을 7000원밖에 못 받는다는 얘기다.

평화시위가 정착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확 줄 게 분명하다. 하지만 마음을 놓으면 곤란하다. 평온하게 시작됐던 2008년 쇠고기 촛불집회도 시간이 가면서 폭력시위로 변질됐다. 일부 불온한 세력의 선동과 경찰의 미숙한 대응 탓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가 어려운 터에 폭력시위가 재발하면 국가적으로 이만저만한 손해가 아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늪에서 빠져나올 호기를 놓치게 되는 까닭이다.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