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여당에는 분노, 야당에는 실망…"지지 정당 없다" 정치 실종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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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오른쪽)이 7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 농단 국정조사 2차 청문회’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의 대통령 행적과 관련해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질문하고 있다. 김 전 실장은 이날 의원들의 질의에 “세월호 참사 당시 관저에서 일어난 일은 알지 못한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사진 오종택 기자]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오른쪽)이 7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 농단 국정조사 2차 청문회’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의 대통령 행적과 관련해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질문하고 있다. 김 전 실장은 이날 의원들의 질의에 “세월호 참사 당시 관저에서 일어난 일은 알지 못한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사진 오종택 기자]

“국회, 정신 차려라. 국회는 밥값 해라.” 지난 3일 서울 광화문을 비롯해 전국에서 열린 6차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은 이런 구호를 외쳤다. 집회에 참석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대표,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 등 야당 정치인들도 “똑바로 하라”는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

서울대 사회발전연 1000명 설문
3당 지지율 4년 새 79 → 38%로
무당파층은 17 → 53%로 늘어

청와대를 향하던 촛불이 국회가 있는 여의도로 번지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의 지리멸렬한 모습에 실망을 느낀 시민들의 인내심이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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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서울대 산하 연구기관인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지난 2일부터 사흘간 수도권과 부산·대구·대전 등 6대 광역시의 남녀 1000명(15~69세)을 설문조사한 결과 새누리당·민주당·국민의당 등 주요 세 정당의 지지율은 모두 크게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소가 설문 참가자들에게 18대 대선과 20대 총선, 최순실 사태 등 세 시기로 나눠 지지 정당을 물어봤을 때 새누리당 지지율은 21.1%포인트(30.3%→22.4%→9.2%) 하락해 그 폭이 가장 컸다. 민주당(36.3%→31.3%→22.9%)과 국민의당(20대 총선 12.8%→최순실 사태 5.9%) 지지율도 동반 하락했다.

같은 기간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는 무당파층은 17.2%에서 53.4%로 증가했다. 그만큼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는 의미다. 설문조사를 진행한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에서 야당은 선도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촛불집회의 향방을 뒤따라가는 모습만 보였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대한 분노가 일차적이지만 야당의 무능에 대한 실망도 상당하다”고 분석했다.

특히 각 정당에서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연령층에서 지지를 철회한 비율이 높았다. 새누리당 이탈자의 절반 이상(57.8%)은 50~60대였고, 민주당은 40대 이탈자(36.8%)가, 국민의당은 20대 이탈자(28.9%)가 가장 많았다. 장 교수는 “여당의 경우 국가 시스템의 허점이 드러나자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큰 ‘국가 중심의 보수’층이 빠져나간 것이고, 야당은 탄핵안 표결을 늦추면서 청·장년층이 지지를 철회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차기 대선후보에 대해서도 ‘지지하는 후보가 없다’는 응답이 29%로 가장 많았고, 문재인(22%)·이재명(15.4%)·반기문(10.7%)·안철수(4.9%)·박원순(3.8%)의 순이었다. 새누리당 지지 이탈자 중 37.8%는 ‘지지하는 후보가 없다’, 18.4%는 ‘반기문’이라고 답했다. 민주당과 국민의당 지지 이탈자 중에서는 각각 23.5%, 28.9%가 이재명 성남시장을 차기 대선후보로 꼽았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정치 실종을 극복할 새로운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제왕적 대통령제 등 기존 한국 정치가 갖고 있던 문제가 한꺼번에 터진 것이다. 새 정치 시스템 설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윤재영 기자 yun.jaeyeong@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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