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서로 회사를 망하게 하다니…"|「박건석회장 자살」을 보는 가계의 반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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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범양상선 박건석회장의 자살은 그 동기가 믿고 키워온 부하이자 후배 경영인의 배신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한 개인의 죽음을 넘어 「이 사회가 도덕적으로 이렇게까지 타락했는가」 하는 충격을 사회 전체에 던지고 있다.
○…신봉식전경련 상근부회장은 이번 사건에 대해 『한솥밥을 먹던 사람이 사주를 모함하는 투서로 곤경에 빠뜨렸다는것은 이유야 어디에 있든 타락한 세태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이 사건에 감추어진 윤리관·도덕관의 타락을 개탄했다.
사건발생후 열린 J은행의 임원회의에서도 이번 사건에대해 『전문경영인이 오너에 그렇게 할수있는가. 인간적인 배신이다』고 개탄하고 『이번일로 오너가 전문경영인을 불신하는 풍조가 생긴다면 큰일』이라고 앞으로 이사건이 경제계에 미칠 영향에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비리가 있는 경우에 이것이 바로 잡아져야 한다는데는 이견이 있을수 없다.
이런 점에서 죽음의 길을 택한 박회장이 잘못이 있었다면 그 잘못은 지워질수 없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경제기획원의 한 고위간부는 선·악의 판단에 너무 감정을 앞세워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한번 나쁜 사람으로 지목되면 변명의 기회도 주지않고 몰아붙이는 풍토라고 지적, 한상연사장에게도 할말을 하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누구의 어떤 비리이건 그것을 투서라는 형식으로 모략·음해하는 풍조에 대해서는 어느 계층을 막론하고 거센 반발을 보이고있다.
가정주부 양유경씨 (56·서울사당1동) 도 한 회사내에서 투서와 같은 비열한 수법으로 남을 모함하는것은 기업윤리에도 어긋날뿐 아니라 사회발전에도 해롭다고 지적하고 같은 조직내의 웃사람을 음해하는 투서를 했다는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서울대 황경식교수 (철학)는 투서가 늘어나는 사회현상을 공동사회에서 이익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사회에서 전통적인 윤리관의 와해와 함께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분석하고 사회부정이나 부조리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투서창구가 불가피할지 모르지만 개인적인 복수심이나 사리사욕을 목적으로 한 투서는 사회적 건강을 크게 해친다고 경고했다.
이용준노총부위원장은 현대사회가 경쟁사회라고는 하지만 투서로 상대방을 헐뜯고 비방하는 행위는 건전한 경쟁에 필요한 페어플레이정신을 짓밟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번 사건에서 자살한 박회장에게도 문제가 없었던것은 아니라고 할수있다.
자신이 키워온 후배라면 극단적인 대립까지 가지 않고 대화와 타협으로 사건을 수습,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지 않을수도 있었을 것이고 그에 앞서 책잡힐 일은 하지 말았어야한다.
미주산업의 박은태회장은 이번 사건이 오너에 대한 존경심과 부하에 대한 신뢰감이 약한데서 비롯된 것이며 따라서 상하모두에게 인격적 책임이 있다고 지적하고 기업주가 아직 국민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지못하고 있는 시점에서 일어난 사건인 만큼 뒤처리를 잘해야 할것이라고 말했다. 박회장은 특히 이번 일로 기업가의 창업의욕을 꺾어 자본주의 정착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했다.
○…정가에서도 범양사태에 대해서는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특히 사주와 전문경영인간의 갈등과 투서행위등 기업윤리측면에 우려를 표시.
심명보 민정당대변인은 『사람이란 원래 죽을때는 선해지는 법인데 유서에 깊은 원한을 남긴것을 보면 박회장이 한사장의 음해를 입은 인상을 받는다』며 『이유여하를 떠나 자기 밥먹는 직장을 욕하고 망하게 하는것은 자기 말살행위』라고 지적. 또 조상래의원(민정)은 『기업뿐 아니라 모든 조직에서 배신행위는 매도되어야한다』고 강조.
통일민주당의 김수한창당부위원장은 『내부 밀고->자살이란 이번 사건에서 윤리상실의 서글픈 단면을 본다』고 했고 양순직 창당부위원장도 『박회장의 외화유출 사실여부를 떠나 상사에 대한 밀고행위는 도덕적으로 규탄받아 마땅하다』고 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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