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의 모습|박근자 <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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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따뜻한 체온이 금방 감촉될듯한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대리석에 새긴 위대한 조각가 「로댕」. 그의 수많은 걸작품들 속에서도 내 젊은날 나를 사색의 늪에 빠져들게한 작품은 어느 여인의 늙고 추해진 모습이었다.
조각의 제목은 삼가겠으나 탄력 넘치는 젊고 아름다운 육신이 그녀가 지닌 전부로 그것을 파는 것이 직업이기도 했던 한 여인의 노년기 모습이었다.
현세의 종점이 하도 아득해 바라다 보이지도 않던 젊은날, 아름다운 육신의 향기에 취해 자만했던 시절을 가진 것이 어디 그녀 뿐이겠는가.
생자필멸, 어느 인생인들 피해갈 수 없는 질서다.
그러나 만약 인생 고해의 질서가 놓여지지 않았더라면, 다시 말해 인생이 자신에 찬 젊음만이 있다면 우리의 영혼이 구원받을 길은 없었을 것이다.
행복했던 시절보다도 감내하기 어려운 통한의 슬픔, 그 시련의 시기들을 통해 남의 아픔이 비로소 내 아픔이 되어지는 마음의 뜰이 열려지는 것이기에 생자필멸의 질서속에 삶의 뜻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얼마전 『미션』이란 영화를 보았다.
실제로 18세기에 있었던 순교사라 했다.
남미의 이과수 폭포라는 대자연을 묘사하는 음향과 음악이 압도적인 감동을 주기도 했지만, 뚜렷하게 주인공이 창출해내는 메시지의 전달 또한 강렬했다.
그중에서도 나중까지 기억에 남는 것은 「멘도사」라는 인물의 설정이다.
아마존의 오지 정글속, 원주민들을 신의 세계로 전도하는 예수회 신부님들과는 대조적으로 「멘도사」는 원주민을 사냥해 노예로 파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마존의 비경 속에서 노예사냥을 하고 있는동안 그의 사랑하는 여인은 남동생의 애인이 된다.
그로해서 그는 수치심과 질투와 분노를 참지 못해 동생을 살해하게 되고 사랑하는 단 하나의 동생을 죽인 슬픔은 그를 죽음에 이르는 세월을 택하게 했다.
그러나 예수회 신부의 감화로 그는 힘겨운 속죄의 길을 택해 전도사가 된다. 그리고 그도 다른 예수회 신부들과 함께 순교한다.
노예사냥이나 해서 돈이나 벌고 여인을 사랑하다 한 세상 살다갔을 「멘도사」는 엄청난 시련의 시기로 해서 영혼의 구원을 얻게되는 것이다.
은총의 모습!
인간의 지로 헤아려 볼 수 없는 모습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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