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검찰 수사로 전말을 밝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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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양길승 대통령 부속실장의 향응 사건은 갈수록 역겨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대통령 부속실장이란 사람이 지방까지 내려가 흉악 및 파렴치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와 술자리를 같이 한 것만도 기가 찬 노릇인데 술집 접대부와 같이 찍힌 몰래카메라 필름까지 폭로됐다.

이것은 권력과 조폭 간의 음습한 뒷거래 가능성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청와대가 이러고도 개혁을 외치고 국정을 운위할 수 있을지 개탄스럽기만 하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데는 고위공직자 및 대통령 주변에 대한 자체 정화 기능이 부실한 데 가장 큰 원인이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 주변 인물이 연루된 사건들이 빈발했지만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전말을 시원하게 밝힌 것이 없고, 의혹을 덮기에 급급했다. 이번 사건만 해도 이미 한달 전에 자체 조사가 이뤄졌지만 겉핥기로 마무리하고 묻어버리지 않았는가.

이미 1차조사에서 실패한 청와대가 다시 자체 조사로 끝내려 할 것이 아니라 정식으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해야 한다. 그래서 梁실장에게 향응을 제공한 사람들의 청탁은 없었는지, 약점을 이용한 협박은 없었는지, 또 어떤 세력이 무슨 목적으로 당시 상황을 몰카로 찍고, 이를 언론에 흘렸는지도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

대통령 주변 인물의 개인적 약점을 잡고 협박하는 일이 생긴다면 국가안보를 위협할 수도 있는 일이며, 범죄자들이 이권다툼을 위해 그런 일을 벌였다고 해도 뿌리를 뽑아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할 문제다.

이를 위해 청와대는 부속실장의 사표를 즉각 수리해 검찰이 부담없이 수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제까지 드러난 梁실장의 처신만으로도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서 모실 부속실장으로선 부적격하다.

그리고 청와대는 권력 핵심인사들 중 개인적 약점이 잡혀 곤란한 처지에 빠진 또 다른 경우는 없는지를 점검하고, 대통령 핵심 측근들의 처신을 감시할 자체 정화 기능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