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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상황 달라졌다” 국회 추천 총리 거부 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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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순실 국정 농단 대통령 거취 놓고 대치 장기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당은 21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추진을 각각 당론으로 확정했다. 이에 대해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어떤 헌법과 법률에 근거해 탄핵이 되는지 사유를 제시하라”며 반발했다. 왼쪽부터 이 대표, 추미애 민주당 대표,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사진 오종택·강정현 기자], [뉴시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당은 21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추진을 각각 당론으로 확정했다. 이에 대해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어떤 헌법과 법률에 근거해 탄핵이 되는지 사유를 제시하라”며 반발했다. 왼쪽부터 이 대표, 추미애 민주당 대표,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사진 오종택·강정현 기자], [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의 거취를 둘러싼 대치가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21일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기로 당론을 결정했다. 탄핵은 결론이 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도 이날 “탄핵은 (헌법재판소의 심리에만)최장 6개월이란 긴 시간이 걸리는 만큼 엄청난 국력 소모가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야권, 총리 추천 움직임 보이자
청와대 “다른 뜻 있는 거 아니냐”
논란 일자 “입장 불변” 한발 물러서
“퇴진 전제 총리카드 못 받아” 주장도

지금도 국정은 최순실 사태로 인해 정상인 상황이 아니다. 박 대통령이 지난 3일 지명한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는 20일 가까이 ‘식물’ 상태고, 국정은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것 자체가 논란이 되는 상황이다. 실제 22일 열리는 국무회의는 박 대통령 대신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주재키로 했다. 경제부총리가 주재하는 회의에서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과 최순실 사태와 관련한 특검법안을 처리한다. 이런 상황이 내년 중반까지 지속될 수 있다.

이날 새누리당 비주류 협의체인 비상시국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박 대통령에 대한 ‘징계 요구안’을 당 사무처에 제출했다. 사실상 박 대통령의 출당을 요구한 것이다. 박 대통령 출당을 요구해온 남경필 경기지사와 김용태 의원은 22일 탈당한다. 일련의 움직임 모두 박 대통령 탄핵정지 작업의 하나로 정치권은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 친박계는 박 대통령 징계(출당) 문제는 최고위에서 가로막겠다는 입장이다. 정진석 원내대표도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야권 주도로 탄핵을 추진하고, 여당 비박계 의원이 합세해 탄핵안을 통과시킨다고 해도 최장 6개월의 헌법재판소 심사 기간이 걸릴 뿐 아니라 헌법재판관 인사 문제도 복병이다. 9명의 헌법재판관 중 박한철 헌재소장 임기가 내년 1월 말, 이정미 재판관은 3월 14일 만료된다.

헌재소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고, 재판관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박 대통령의 운명을 결정할 후임 소장과 재판관의 임명과 청문회를 두고 새누리당 친박계와 ‘비주류+야권’의 대치는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야권의 퇴진 압박을 받고 있는 박 대통령이 아예 인사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시간은 더 지연될 수밖에 없다.

최장 4개월간 활동할 수 있는 ‘최순실 특검’도 지뢰밭이다. 전날 박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 밝히며 ‘중립적 특검’에게서 수사를 받겠다고 했다. 야권은 “특검 인선을 청와대가 반발하며 특검 자체를 방해할 수 있다”(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고 의심하고 있다.

아예 야권이 추천한 특검에 박 대통령이 사인을 안 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실제로 새누리당 친박계 조원진 최고위원은 이날 “야당이 특검 후보 2명을 추천하게 돼 있지만 중립적인 인사를 추천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국정 공백의 장기화가 불가피한 상황에선 국회가 총리 인선 문제를 우선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결국은 야권이 책임총리를 빨리 임명하는 방법 외엔 해법이 없다”고 말했다.

야권도 총리 추천 작업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민의당은 민주당·정의당에 대표회담을 열어 이 문제를 본격 논의하자고 요구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대통령이 임명을 거부하더라도 일단 야권이 총리를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간 총리 추천에 대해 소극적이던 민주당도 의원총회에서 이번 주 안에 총리 추천 문제를 매듭짓기로 했다.

청와대는 이날 국회가 총리후보자를 추천하는 문제에 모호한 반응을 보였다. 박 대통령은 지난 8일 정세균 국회의장을 방문해 국회가 총리를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야권은 거부해왔다. 이와 관련,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박 대통령의 제안에 야당은 다른 뜻(탄핵 국면관리 목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거 아니냐. 지금 상황이 좀 달라졌으니까 지켜보자”며 제안 철회를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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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논란이 일자 정 대변인은 “입장 변화는 없다”고 한 발 물러섰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 퇴진 또는 임기단축을 전제로 한 총리 카드를 어떻게 받을 수 있겠나”라고 전했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의 정상 외교를 포함해 국가적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며 “탄핵처럼 엄중한 상황이 예고된 만큼 청와대와 국회 모두 책임의식을 갖고 빨리 새 총리와 내각을 구성해 국정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이충형·유성운 기자 adche@joongang.co.kr
사진=오종택·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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