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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APEC 간 저커버그, 검찰 간 한국 기업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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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수련 기자 중앙일보 산업부장
박수련 산업부 기자

박수련
산업부 기자

세계 최대의 커뮤니티 ‘페이스북’을 움직이는 그가 이번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페루 리마로 갔다. 19일(현지시간) APEC 정상회의 개막식 무대에서 그는 자신의 단골 레퍼토리인 ‘연결(connectivity)’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

그는 “아직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은 40억 명은 향상된 삶을 살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세계의 지도자들이 이 격차를 줄일 수 있도록 함께하자”고 외쳤다.

이 기업가는 연설이 끝난 후 정상들과 동그랗게 둘러앉아 다시 그 ‘연결’을 주제로 간담회를 진행했고, 그들의 머리에 페이스북의 자회사인 오큘러스VR의 VR(가상현실) 기기를 씌웠다. 마크 저커버그(32)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 얘기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지구 반대편 페루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런 만남을 저커버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하고 있다. 게시물에 다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만남과 교감은 머지않아 페이스북의 사업 기회로 이어질 것이다. 이미 17억9000만 명(2016년 3분기 기준)을 연결한 페이스북의 CEO가 개발도상국의 인터넷 사용을 확대하는 비영리단체(인터넷.org)를 만들고, 아프리카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키우는 스타트업(안델라)을 지원하는 것도 단순한 사회공헌이 아니다. 40억 명의 신시장을 향한 페이스북의 전략적 투자다.

하지만 요즘 우리에게 이런 뉴스는 그야말로 남의 나라 사정, 딴 세상 이야기가 돼 버렸다. APEC엔 검찰 수사 대상인 박근혜 대통령을 대신해 황교안 국무총리가 참석했다. 매년 대통령과 함께 APEC에 참석했던 기업들도 올해는 무소식이다. 지난해 7월 대통령과 마주앉아 독대했던 7개 기업 총수들은 검찰에 불려나갔을 뿐이다. 특검·국정조사까지 거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동안 기업 경영은 뒷전일 게 불을 보 듯 하다. 검찰과 국회에 불려 다니며 무슨 일인들 제대로 되겠나.

기업 입장에선 답답할 것이다. “부당해도 권력의 요구를 무시할 대한민국 기업이 어디 있겠느냐”고. 하지만 기업이 허점을 보인 측면도 있다. 특히 경영권 승계가 그렇다. 삼성의 경우 경영권 승계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고, 롯데는 승계 과정에서 형제가 싸웠다. 혹시 이 과정에서 권력에 책 잡힐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비선 실세들이 더 당당하게 뭔가를 요구했던 건 아닐까. 기업들 스스로 이런 문제를 해소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정치 권력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오너 리스크’에 휘청이는 기업에 능력 있는 인재들이 모일 까닭이 없고, 그런 기업이 일류 기업으로 성장할 리도 만무하다. 저커버그처럼 글로벌 정상들과 마주 앉아 미래를 얘기하는 모습도 그저 꿈일 뿐이다.

박 수 련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