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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혼란 와중에 ‘밥그릇’ 챙기는 지방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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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호 기자 중앙일보 기자
신진호 내셔널부 기자

신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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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들은 월세 낼 걱정을 하는데 의원님들은 월급을 인상한답니까? 서민들 생각해서 이번만은 참아주세요·” 17일 충남 홍성군 홍성읍내에서 만난 한 상인의 푸념이다. 충남도의회가 내년도 의정비를 올린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주민들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오랜 경기불황에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 시행으로 생계를 걱정하는 상황인데 제 밥그릇만 챙기겠다는 지방의회 모습이 달갑지 않아서다.

충남도의회를 비롯해 충북 청주시의회, 경기 수원시의회와 용인시의회, 광주광역시의회 등이 의정비 인상을 추진하고 나섰다. 대부분 공무원 보수 인상률(3%가량)에 맞춰 의정비를 인상하겠다고 한다. 지방의회 의정비는 의정활동비와 월정수당으로 구성된다. 의정활동비는 지방자치법에 정해져 있어 법을 바꾸지 않는 한 인상이 불가능하다. 월정수당은 각 지방의회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인상해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안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좀 다르다.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 사건으로 청와대와 정부 기능이 사실상 마비되다시피 한 틈을 타 지방의회가 의정비 인상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인상률은 대부분 3%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충남도의회는 월정수당을 매달 312만원에서 317만2000원으로 인상하는 개정 조례안을 입법예고했다. 매년 의원 1인당 62만원을 더 받게 된다. 청주시의회도 내년도 월정수당을 3%(38만4000원) 인상하는 조례 개정안을 회기 안에 상정키로 했다. 올해 3.8%(129만원)를 인상했던 광주시의회는 내년에도 3%(106만원)를 올리기로 결정했다.

반면 충북 제천시의회와 단양군·괴산군의회는 의정비를 동결할 예정이다. 제천시의회는 2009년부터 9년째 동결이다. 제천시의회의 올해 의정비는 3420만원으로 청주시의회(4210만원)보다 790만원이나 적다. 괴산군의회는 임기가 끝나는 2018년까지 3117만원인 의정비를 동결하기로 했다.

지방자치법에는 ‘월정수당은 의정비심의위원회가 지방의회 선거가 있는 해에 재정능력 등을 고려해 결정한 금액 이내에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방의회가 새로 구성된 해에 심의위원회를 열고 인상률을 결정한 뒤 4년간 이를 지키도록 했다. 이를 근거로 대부분의 지방의회가 공무원 보수 인상률에 따라 매년 의정비를 올리는 내용의 조례를 만들었다.

의정비 인상은 지방의회의 권리다. 다만 지방의회 의원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의정비가 국민 세금이란 사실이다. 대통령 탄핵과 하야 주장이 나올 정도로 지금 국민은 분노와 허탈감에 빠져 있다. 의정비 인상보다는 동결 선언이 필요한 때다.

신 진 호
내셔널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