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이후의 정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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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박종철군 49재의「민주화 대행진」을 둘러싼 강행과 저지의 대결은 일단 끝났다.
인천사태와 같은 소란과 파괴없이 끝난것은 천만다행이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의 승리도,어느 한편의 패배도 아니다. 우리 모두의 패배일 뿐이다.
죽음뒤에는 추도회가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정치문제에 관련된 죽음이라면 추도회도 정치성을 띠지 않을수 없다. 그것은 동서나 고금의 어느 나라에서나 있어온 일이다.
불교계가 적잖게 참여한 것은 3·3행진을 과거의 다른 야권집회와 구별할수 있는 변화라면 변화다.
과거 일부 대학생과 근로자들에 국한됐던 이런 움직임이 오늘 종교계에 까지 파급된 것은 뜻을 새겨 보아야 한다.
그런 행사를 공권력을 동원, 원천봉쇄한다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못된다. 오히려 갈등요인만 누증시킬 뿐이다.
그러나 과격한 시위의 반복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분명하다.
그것은 오히려 질서의 혼란을 가져와 평화적 해결을 저해하고 민주화를 지연시킬 위험마저 있다.
지금 우리는 다급한 정치일정에 쫓기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3∼4개월 안에 개헌문제가 타결되지 않으면 우리의 정치상황은 예상할수 없는 시계 제로의 상태에 빠지고 만다.
벌써 개헌연기론등 정치후퇴의 발상마저 나오고 있지 않은가. 정치발전이 시급한 이때 그런 풍문이 돈다는 것은 국민의 뜻을 외면한 소치다.
이제 여야 지도자들은 차분한 마음으로, 그러나 진지하고 엄숙하게 정치일정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방법은 아무리 백마디, 천마디 말을해도 오직 하나뿐이다. 대화를 통한 합의다. 평화적이 아닌 모든 것을 국민은 받아 들이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행동을 앞세우는 양측의 극단파는 뒤로 물러서야 할 때다. 온건하고 합리적인 세력이 성실한 대화에 임해야 한다.
그 대화는 생산적이어야 한다. 모여서 고집불통의 줄다리기 입씨름이나 하다 헤어져서는 안된다. 만나면 반드시 합의를 축적해 나가는 대화여야 한다.
노태우대표가 합의개헌을 위해 당력을 총집결하고 야당과도 활발히 대화해 나가겠다고 한 것은 처음 듣는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귀담아 들어둘만 하다.
문제는 민정당이 거기에 선행하여 명쾌한 민주화 방안을 만천하에 밝히는 일이다.
반드시 있어야할 그것이 없기 때문에 협상할 자리조차 마련되지 않고 있다.
개헌과 그에 따른 관련법률의 개정은 빠를수록 좋다. 그것은 어느정파나 개인의 이익보다는 국민의 다수의사와 합치되고 민주화를 가속시키는 내용이어야 한다.
이런 조건을 갖추지 못하면 정치적 불안정과 사회적 소요는 진화되기 어렵다.
태풍의 한 고비는 지났다. 그러나 제2,제3의 태풍이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 「3·3사태」가 마지막 파도가 되도록 정치지도자들의 애국적 결단이 있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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