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1호 과녁…세계 자동차 ‘멕시코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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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준공한 기아차 멕시코 공장에서 K3(현지명 포르테)를 생산하고 있다. 이곳에선 연간 최대 40만 대를 생산할 수 있다. 기아차는 멕시코 공장 생산량의 60%를 북미로 수출한다는 계획이다. [사진 기아차]

지난 9월 준공한 기아차 멕시코 공장에서 K3(현지명 포르테)를 생산하고 있다. 이곳에선 연간 최대 40만 대를 생산할 수 있다. 기아차는 멕시코 공장 생산량의 60%를 북미로 수출한다는 계획이다. [사진 기아차]

세계 자동차 업계가 트럼프발 ‘보호무역주의’의 첫 번째 타깃이 될 가능성에 잔뜩 긴장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 내내 “미국인의 일자리와 부(富), 공장을 되찾기 위해 중국산 수입품에 45%, 멕시코산 수입품에 3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강조했다. 업계는 이런 공약들이 현실화할지에 촉각을 세워 왔다.

북미 3개국 나프타 재협상
35% 관세폭탄 현실화 우려
포드 등 미국 업체도 반발
1조 투자 기아차도 초비상

지난 15일(현지시간) 트럼프 정부가 취임 즉시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NAFTA) 재협상에 나서겠다는 정권인수위원회의 계획이 공개되자 자동차 기업들은 비상이 걸렸다. 1994년 발효된 나프타는 미국·캐나다·멕시코 등 북미 3국 간에 관세 없이 재화와 서비스를 이동하도록 한 협정이다. 당장 35%의 ‘폭탄 관세’가 부과될 경우 값싼 인건비와 비관세 혜택을 노리고 멕시코에 공장을 세운 기업들의 노력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실제 멕시코 대외 수출의 무려 85%가 미국으로 향하고, 지난해 미국·멕시코 간 교역 규모는 5310억 달러(약 621조원)에 달한다.

자료 : 현대차·기아차·AMAI·하이투자증권

자료 : 현대차·기아차·AMAI·하이투자증권

반발과 우려는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미국 포드자동차의 마크 필즈 최고경영자(CEO)는 15일 로스앤젤레스에서 개막한 ‘LA 오토쇼’ 기조연설에서 “멕시코산 자동차에 35%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 경제에 엄청난 영향(huge impact)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포드는 2018년부터 모든 소형차를 멕시코에서 생산하기로 하고, 멕시코 산루이스포토시에 추가로 자동차 공장을 건설할 계획을 세운 상태다. 필즈 CEO는 “트럼프 당선인이나 자동차 기업들 모두 건강하고 활기찬 미국 경제라는 같은 목표를 공유하고 있는 만큼 올바른 정책이 나올 것이라 확신한다”고 공약 수정 기대감을 드러냈다.

다른 자동차 기업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 14일 일본 최대 자동차 기업인 도요타는 멕시코 신공장 기공식에서 ‘불안한 첫 삽’을 떴다. 기공식에 참석한 우치야마다 다케시 도요타 회장은 “멕시코는 세계적인 생산 허브이며 신공장은 도요타의 미래 제품 생산을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요타는 이번 멕시코 신공장에 10억 달러(약 1조1700억원)를 투자하며 2019년부터 연간 20만 대의 소형차 ‘코롤라’를 생산할 계획이다. 트럼프의 보호무역 기조를 의식한 듯 기공식에서 일데폰소 과하르도 비야레알 멕시코 경제장관은 “나프타는 북미 경쟁력을 낳는 원천”이라고 강조했다.

자료 : 현대차·기아차·AMAI·하이투자증권

자료 : 현대차·기아차·AMAI·하이투자증권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도요타는 미국 대선 직후 현지에서 로비스트까지 고용해 ‘트럼프 인맥 찾기’에 나서 현지 전략 차질을 최소화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멕시코에 생산기지를 둔 기아자동차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기아차는 총 1조원을 투자해 지난 9월 연간 40만 대 규모의 멕시코 공장을 준공했다. 지난 5월부터 준중형차인 K3(현지명 포르테) 생산에 들어갔다. 생산량의 60%를 북미로 수출할 계획인데 트럼프가 35%의 관세를 매기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기아차 관계자는 그러나 “멕시코엔 기아차뿐 아니라 미국 3대 자동차 회사인 GM(연 생산능력 72만 대)·포드(64만 대)·피아트-크라이슬러(61만 대) 공장이 있다. 높은 관세를 매기면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건 미국 기업들이라 실행에 옮기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아차는 지난달 박우열 상무를 멕시코 법인장으로 승진 발탁하고 트럼프 정부에 대비한 ‘ 비상 계획 ’을 가동 중이다.

트럼프의 통상 보복은 글로벌 자동차산업을 크게 교란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멕시코가 글로벌 자동차 산업 공급망(supply chain)의 중심지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은 자동차 부품을 세계 각지에 분산된 공장에서 생산한 뒤 멕시코에서 조립하거나 반조립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메이드 인 USA’ 딱지가 붙은 자동차라 해도 부품 상당수는 멕시코산이어서 실상은 미국에서 조립된 것일 뿐이다. 멕시코에 대한 고율의 관세가 결국 미국 자동차산업에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 공공정책 싱크탱크인 프로그레시브 폴리시 인스티튜트는 “나프타를 파기하는 쪽으로 가더라도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므로 쉽게 추진되지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소아·김기환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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