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충전소] ‘우주개발 아버지’ 첸쉐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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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중국 우주개발의 역사는 첸쉐썬(錢學森·1911~2009·사진)을 빼놓고 논할 수 없다. 그는 ‘중국 우주개발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에서 태어났다. 상하이(上海) 자오퉁(交通)대학을 다니던 도중 미국 유학을 떠났다.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기계공학 석사를, 칼텍에서 수학과 항공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졸업 후 지금의 미 항공우주국(NASA) 소속인 제트추진연구소(JPL)의 초창기 연구원으로 들어가 활동했다.

유학 간 미국서 미사일 개발
매카시즘 광풍에 간첩 몰려
중, 미군 포로 11명과 맞교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국방과학위원회에서 중령 대우의 로켓 부문 수장으로 근무하며 탄도미사일 개발 등 미국 군사과학 발전에 많은 공헌을 했다. 종전 직후 MIT를 거쳐 칼텍 교수가 됐다. 하지만 1950년 미국 전역에 매카시즘 광풍이 불어닥치면서 간첩 혐의로 체포돼 가택 연금됐다. 55년 중 국은 한국전쟁 당시 인민해방군에게 붙잡힌 미 공군 조종사 11명과 교환하는 조건으로 첸 박사를 데려왔다. 미 국무장관을 지낸 키신저의 회고록에 따르면 중국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이 첸 박사를 영입하고자 했을 때 미 국방부의 한 고관은 “첸 박사는 미 해병대 5개 사단의 전투력에 맞먹을 만큼 중요한 인물”이라며 중국에 보내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마오쩌둥은 귀국한 첸 박사를 중국 국립과학원 원장으로 추대하고 최고로 예우했다. 첸 박사는 곧 미사일 및 우주개발에 착수해 70년대 첫 핵 탑재 미사일 발사에 성공했고, 그 후 유인 우주선 선저우 5호 발사의 토대를 마련했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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