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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정치권력 갈취 없애려면 기업도 수사 협조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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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순실 사건의 후폭풍이 기업으로 향했다. 검찰은 어제 삼성전자 대외협력단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한 데 이어 다른 기업들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출연금을 낸 53개 기업을 상대로 전수조사에 나선다는 얘기다. 검찰은 수사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관련 기업 총수를 소환하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엄포성 발언이라고 하기에는 검찰의 분위기가 엄중하다. 현직 대통령도 조사하기로 한 마당에 재벌 총수에 대한 소환 조사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검찰은 최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에 대해 제3자 뇌물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러면 돈을 준 기업은 뇌물공여 혐의를 피할 수 없게 된다.

관련 기업들은 사실상 공갈과 협박에 못 이겨 최씨 재단에 돈을 줬다고 주장하지만 시중의 민심은 의구심 투성이다. 돈을 준 배경엔 “우리에게 특혜를 달라”는 암묵적인 요구가 있었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이 때문에 관련 기업들은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대통령만 되면 제왕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후진적 정치구조 아래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많은 국민은 알고 있다. 선거 때는 ‘차떼기’로 돈을 상납해야 하고, 권력 실세에게는 각종 명목으로 특혜와 이권을 제공해야 기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 우리의 어두운 과거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태는 기업엔 위기이지만 기회이기도 하다. 정치권력에 더 이상 돈을 갈취당하지 않으려면 이번에 모든 걸 털고 가야 한다. 특히 재단 설립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를 했던 7대 기업은 고해성사를 하는 심정으로 당시의 상황을 검찰에 소상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판단 능력이 떨어지는 대통령을 앞세운 무속인에게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수십억원씩 돈을 뜯겨서야 되겠는가. 검찰 수사를 받고, 총수 일가까지 회사에서 쫓겨나가는 수모를 당하고도 침묵으로만 일관하는 것은 또 다른 권력형 비리를 가능케 해주는 토양이 될 뿐이다. 지긋지긋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는 노력만이 분노한 국민의 용서를 구하는 길이다.